한 아이의 꿈
김상미
한 아이가 죽은 쇠박새를 묻고 있었다
지나가던 나도 흙 한 줌 쥐어 덮어주었다
천국에도 분명 새가 있을 거예요
물론이지, 내일이면 저 쇠박새도 천국을 훨훨 날아다닐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 뜨덕이며
쇠박새야, 이젠 천국으로 훨훨 날아가거라
그러곤 소맷부리로 눈물을 닦았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는
걱정 마, 쇠박새는 꼭 천국으로 날아갈 거야
고마워요, 아이가 눈물 고인 미소로 꾸벅 인사를 했다
우리 쇠박새가 좋아하는 풀씨를 무덤 앞에 놓아줄까?
그래요, 그럼 쇠박새도 더 잘 날아갈 것 같아요
아이와 나는 근처 풀밭에서 씨 여문 풀꽃을 뜯어
쇠박새 무덤 앞에 놓아주었다
쇠박새는 들고양이에게 물려 죽었지만
천사 같은 아이를 만나
지상에 따뜻한 무덤 한 칸을 얻었다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에 두 사람의 진심 어린 애도를
품에 꼭 껴안고 천국으로 떠났다
아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밤은 아무 걱정 없이 단꿈에 젖을 것 같았다
쇠박새 한 마리 천국으로 훨훨 날려 보내는
한 아이의 꿈속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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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詩魔』 2023-여름(16)호 <시마詩魔_여름 신작시> 에서
* 김상미/ 1990년『작가세계』로 등단, 시집『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떼』『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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