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꽃의 이마/ 박현주

검지 정숙자 2024. 1. 19. 16:06

 

    꽃의 이마

 

     박현주

 

 

  논마다 물이 그렁그렁하다

 

  손짓하던 어린 날의 아버지처럼

  심어진 모들이 수신호를 보낸다

 

  시간의 얼룩에 기댄 창밖으로

  제천역 표지판을 지날 때

  강 위의 철길을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

 

  건널 강폭이 넓어 힘센 기차도

  출렁이는 소리 요한하다

 

  철로 위는 그때에도 노란 꽃들이 피었으리라

 

  갈 바 없는 마음을 

  물 댄 논에 이식한 아버지는

  색을 다하면 계절이 바뀌는

  꽃의 방법을 눈여겨보았겠지

 

  한철 계절을 다녀간 꽃의 이마에서는

  달아오른 쇠냄새가 난다

 

  화단의 금계국은 매일 다른 거울로 피었다가 진다

  깨진 조각을 들어 얼굴을 비춰본다

 

  금계국 한 더미 후두둑

  다 진 후다

   -전문(p.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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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3-겨울(92)호 <2023년 제10회 전국계간문예지우수작품상/ 다층_수상자/ 신작시> 에서

 * 박현주/ 2010년 『시평』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