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파랑의 역사/ 문영하

검지 정숙자 2024. 1. 19. 15:52

 

    파랑의 역사

 

    문영하

 

 

  파도에 휩쓸렸었다

  죽음의 손을 잠시 잡았던 나는

  거짓 같은 내 몸을 붙들고 살고 있다

 

  헛것처럼 스쳐 간 죽음이

  나에게 알려준

  파랑의 깊이

 

  가물거리는 나를 부르는 소리 있었다

  아버지 품에서 눈을 떴을 때

  물속의 하늘로

  새떼들이 먹먹히 날고 있었다

 

  잠에서 깨면 아직도 파랑의 물속이었다

  파랑이라고 쓰면 젖은 손이

  내 이마를 쓸어 주었다

  나는 파랑에서 얼마나 걸어 나왔나

 

  스스로 깊어져 물이 되고 하늘이 되는

 

  저 고요한 파랑을 읽고 쓰는 일은

  나를 기록하는 일

  한 번 죽은 내가 그 속에 살고 있다

     -전문(p.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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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3-겨울(92)호 <2023년 제10회 전국계간문예지우수작품상/ 미네르바_수상자/ 신작시> 에서

 * 문영하/ 201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청동거울』『오래된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소리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