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성조_시간을 건너는 일상적 삶의 풍경(발췌)/ 우득 씨의 열한 시 반 : 고두현

검지 정숙자 2024. 1. 19. 01:57

 

    우득 씨의 열한 시 반

 

     고두현

 

 

  또 늦는다는 택배 문자

  저녁 아홉 시까지는 종료해야 하는데

  밤 열한 시 반까지 갖다 드리겠다고

  양해 바란다고 또 주억거리며

  고개 숙이는 문자 앞에서 한풀 더 죽는

  우득 씨

 

  손가락 빈틈으로 박스 안간힘 내리고 올리며

  짐수레 옮기는 우득 씨의 퇴근 시간은 늘

  열한 시 반, 그제사 집으로 배달되는

  마지막 택배는 그 몸뚱아리

 

  그래도 출근은 빨라 남보다 한 시간 먼저

  일 시작하는데 언제쯤 아홉 시에 끝낼 수 있을까

  문자도 깔끔하게 마감할 수 있을까

  아킬레스건 한 줄 끊어진 뒤로

  뒤꿈치 절룩이는 걸 숨기며 걷는 우리 동네 우득 씨.

     -전문-

 

  ▶시간을 건너는 일상적 삶의 풍경(발췌) _김성조/ 시인 · 문학평론가

  위 시편 「우득 씨의 열한 시 반」은 오늘을 살아가는 소시민적 생활양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열한 시 반"은 시적 주체인 "우리 동네 우득 씨"의 하루를 가로지르는 시간개념이다. 이는 "또 늦는다는 택배 문자/ 저녁 아홉 시까지는 종료해야 하는데", "출근은 빨라 남보다 한 시간 먼저/ 일 시작하는데" 등의 상황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의미구도는 "언제쯤 아홉 시에 끝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 속에 포섭된다. "아홉 시"와 "와 "열한 시 반" 사이엔 뛰어넘을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놓여있다. 몸으로 감수해야 하는 집요한 노동의 무게가 바로 그것이다. "손가락 빈틈으로 박수 안간힘 내리고 올리며/ 짐수레 옮기는" 삶의 무게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모순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우득 씨의 퇴근 시간은 늘/ 열한 시 반"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저녁 아홉 시까지는 종료해야 하는데"는 다만 요원한 희망적 기대에 불과하다. "그제사 집으로 배달되는/ 마지막 택배는 그의 몸뚱아리"에서 일상적 풍경이 되어버린 고단한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아킬레스건 한 줄 끊어진 뒤로 한사코/ 뒤꿈치 절룩이는 걸 숨기며 걷는" 모습은 극단화된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아킬레스건 한 줄 끊어진"의 배경은 비단 신체적 장애요소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는 소외와 단절, 부재와 결핍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의 한 측면을 표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시선을 따라 함께 걸어보는 의미를 이러한 배경 속에서 찾아본다. "우득 씨의 열한 시 반"은 '택배'라는 특정 직업과 연계되어 있지만, 더 넓게, 더 엄밀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활양식을 함축하고 있다. 시간에 쫓기고, 시간에 종속되어 있는 현대적 삶의 근저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득 씨의 열한 시 반"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화두를 내장하게 된다. 우리는 늘 "저녁 아홉 시까지"를 지향하지만, "열한 시 반"의 테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갈등구조가 곧 고두현 시인이 '우리 동네'를 체득하는 상징구도이고, 또한 "삶의 근본을 탐색"해 가고자 하는 성찰적 사유의 원천이 될 것이다. (p. 시 152/ 론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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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3-겨울(92)호 <신작 소시집- 고두현/ 신작시/ 작품론> 에서

  * 고두현/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늦게 온 소포』『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달의 뒷면을 보다』등

  * 김성조/ 1993년 『자유문학』으로 시 부문 & 2013년 『미네르바』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영웅을 기다리며』 외 2권, 시선집『흔적』, 학술저서『한국 근현대 장시사長詩史의 변전과 위상』, 평론집『詩의 시간 시작의 논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