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 언덕의 밤/ 박성현

검지 정숙자 2024. 1. 16. 01:50

 

    그 언덕의 밤

 

     박성현

 

 

  그 언덕은 밤이었고

  식어버린 달이 떠 있었다 아직 밤이 아닌

  남자의 입술에는

  붉은 기와 무늬의 저녁놀이 흘러내렸다

 

  그 언덕의 밤에는

  벽과 나무와 구름이 없어서 남자는

  허리를 세운 채

  낮고 무거운 서쪽에 기댔다

 

  그 언덕의 밤에서

  올빼미가

  울었다 올빼미는 날개를 단단히 잠그고

  회색 머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 언덕의 밤으로

 

  소년들이 걸어왔다

  모두 챙이 넓은 모자를 썼고

  맨 끝에서 느릿느릿 올라오는 소년은

  지팡이를 잡고 있었다

 

  소년들의 얼굴에 묻은

  낮의

  기묘한 어둠, 남자가 기댄 서쪽을

  한 소년이

  주머니칼로 잘라냈다

 

  그 언덕의 밤은

  남자가 사라진 곳 소년들이 이미

  남자의 사지를 둘러메고

  들판으로 향했다

     -전문(p. 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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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3-겨울(92)호 <신작시> 에서

 * 박성현/ 200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