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김광선
언제부턴가 구두를 신으면 왼쪽 발이 아팠다. 가만히 살펴보니 새끼발가락 관절이 있는 곳에 '못'이 박혔다. 원래는 굳은살이라 하겠지만 치이고 또 치이고 동동거리면서 같은 곳으로만 힘을 지탱해야 했던 자리 나는 그 곳에 못을 치고 있었다. 헐렁한 작업신발 빡빡한 삶으로, 헐떡거리며 들숨날숨처럼 쾅쾅 못이 박히는 줄도 모르고 옹이진 자리였다. 희망이라며 생업이라며 절벽 끝에서 버티었던 자리, 오늘 그 고통을 사포로 문지른다. 생살이 싸락눈처럼 하얗게 벗겨지고 있다.
-전문(p. 240)
▣ 몸과 몸의 교차점에서 흘러넘치기/ - 다섯편의 신작시 속에서의 몸(발췌)_이병금/ 시인
어느새 둘러보니 절벽 끝에 자신의 몸이 서 있다. 몸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은 육체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길이 시작하면서부터 봉합할 수 없는 균열로 벌어지고 있었다. 출발부터 문제가 있었던 거다. 좌우대칭이 아닌 비대칭의 삐그덕거리는 틈새에 못을 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박힌 못들을 빼는 것으론 치유가 될 수 없다. 그렇게 살았던 고통의 굳은살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삶의 살은 한쪽으로는 살아 있음을 멈추지 않고 퍼뜨리는 율동이기에 생살을 다시 내리는 것은 싸락눈이 내리듯 춥고 아프지만 견뎌내야 할 자신만의 치유방식이다. 그의 시가 관념으로는 포획되지 않는 삶의 장소, 상황 속에 놓여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래서 몸이 눈부시게 파동치는 연두의 계절에 문득 만나는 죽음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죽음을 체화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이 걸어갔던 길을 다 걸어가고 울음을 모두 흘려낸 후에야 시인은 창밖을 응시한다. 아니, 창밖 신록이 죽어가는 몸에 흘러든다. 몸 밖이 신록이기에 몸은 안으로부터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은 몸은 그 중심이 텅 비었다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텅 빈 것이기에 파동칠 수 있는 게 아닐까. 중심이 꽉 채워져 있다면 어떻게 흔들릴 수 있겠는가. '거죽만 남은 팔뚝 희미한 혈관'으로 항생제가 흘러들고 있는 몸, 그 몸은 흔들리는 주체이기에 자연적인 주체로 확장된다. 창밖 초록의 잎사귀들이 아득하다. (p. 시 240/ 론 2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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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금 평론집 『시 읽기의 새로운 물음』에서/ 2023. 12. 20. <동학사> 펴냄
* 이병금/ 1988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저녁흰새』『어떤 복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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