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농사
유재영
일용할 이슬 몇 홉,
악기 대용 귀뚜라미 울음 몇 말,
언제고 떠날 추녀 끝 초승달,
책 대신 읽어도 좋을
저녁 어스름
아,
그 집에도
밥 먹는 사람이 있어
하늘 한 귀퉁이 빌려
구름 농사짓는다
-전문-
▣ 구름 농사와 인공 자연/ 유재영의 『구름 농사』, 구름 농사를 짓다 (발췌)_이병금/ 시인
시각과 청각, 촉각, 후각 등 신체의 모든 감각을 마치도 마술사처럼 통시적으로 감지해내는 것은 그의 시를 선명한 색깔과 형태로 도드라지게 한다. 그의 시가 자연을 압축, 재현하여 기호화에 성공한 이유는 기억의 지층 속 오래 살아남은 감각 촉수들의 강렬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개체들, 그들의 얽혀듦의 장인 고요, 적막, 여백, 빔을 창작 방법론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작품을 이루는 것은 언어로 자리매김된 대상만이 아니라, 여백이 함께 무게와 빛을 지닌 채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백과 그 여백 속에 살아가는 개체들을 함께 포착하기 위해서 그는 마치 화가처럼 작품 밖에서 관찰자 시점을 견지한다. 즉 이중적 겹의 공간성을 한 편의 시에서 독자는 감지할 수 있다. 그의 시의 특징인 대상의 명징함, 심지어는 대상이 가진 본래적 형태와 색깔을 포착했다는 환상을 독자에게 충분히 심어주는 이유 또한 여백을 만들어낸 관조의 시적 방법론이 적용된 까닭이다. (p. 시 24-25/ 론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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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금 평론집 『시 읽기의 새로운 물음』에서/ 2023. 12. 20. <동학사> 펴냄
* 이병금/ 1988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저녁흰새』『어떤 복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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