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배를 생각함
변희수
나주배가 아니면 배 축에도 못 드는
배가 난전 과일가게에 수북이 쌓여있다
배란 배는 다 나주배로 행세하는 한 철
서로 배다른 자손처럼
영천이니 울산이니 나온 곳은 다 달라도
그게 족보로 따지면 분명 호형호제할 수 있는
한 집안 핏줄
성향을 보면 간단하게 그 집 붙인지 아닌지
한눈에 다 알아볼 수 있다는데
겉이 까칠한 놈도 미끈한 놈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시원시원하고 마르지 않는 품성이
영락없이 모두 나줏집 붙이들이라는 말씀
시장 어귀 어디쯤 오다가다 만나도
그게 그러니까 한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은 아니라도
나도 나주고 너도 나주라고 우기면
다 일가가 되는 한 철
타지에 사는 피붙이처럼
나주 사는 그 아무개에게 살뜰한 기별이라도
한 장 넣고 싶은 그렇고 그런 저녁
-전문(p. 141)// 『다층』 2014-겨울(64)호 수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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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시-100> 에서
* 변희수/ 2011년 ⟪영남일보⟫ &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아무것도 아닌, 모든』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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