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보내주신 식중독
박형권
내 입에 한글 넣어주시려고
글이 넘쳐나 세상 사람 상처 핥아주라고
석류나무 회초리로 후려치신 이후로
한 번도 주시지 않던 아픔을
나이 오십 바라보는 아침에 주시니
맛있게 받아먹고 나 데굴데굴 구른다
석화도 꽃이라면 꽃이라
석화젓 먹고 배 속에서 활짝 꽃피는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다
꽃 한 송이 피려면 들판의 흙조차 진통하는데
프리지아 치마 같은 식중독은
간지러운 아픔이다
그러나 보내주신 음식들은 버려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식중독조차도 조물조물 버무려 바리바리 싸서 보낸
엄마 손끝이 아파 어찌해야 하나
아내도 딸 아들도
한 일주일을 구르다가 이제 조금 웬만하다
식중독을 버무릴 때 자칫 엄마 정성 빠졌더라면
지금 모두 무사했을까
늙은 아들에게 엄마라는 항체 생기라고 식중독을 끼워 보내주셨다
아버지 꼬실 때 물바가지에
버들잎 띄워 올린 그 애틋함으로
-전문(p. 122-123)// 『다층』 2011-봄(49)호 수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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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시-100> 에서
* 박형권/ 200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새로움에 보내는 헌시』외, 장편동화『웃음공장』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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