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작가無名作家
심보선
내가 오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종이 깨지는 소리와
현이 끊어지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펜이 날아와 심장에 꽂혔다
나는 죽음이 야적野積돼 있는 들판이 어디인지 모른다
천재들은 알지도 모르지
나는 천상天上에 아로새겨진 천성天性을 본 적이 없다
천재들은 봤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대충 쓰지 않을 것이다
이번 겨울에는 첫 번째 걸작을 서둘러야지
헌사獻詞 따위는 없다
그러나 결국 나는 바치겠지
내 이름 석 자도 모르는
모든 독자들과
존경하는 비평가들에게
-전문(p. 109)// 『다층』 2009-여름(42)호 수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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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시-100> 에서
* 심보선/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슬픔이 없는 십오 초』『눈앞에 없는 사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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