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나주배를 생각함/ 변희수

검지 정숙자 2024. 1. 14. 03:04

 

    나주배를 생각함

 

     변희수

 

 

  나주배가 아니면 배 축에도 못 드는

  배가 난전 과일가게에 수북이 쌓여있다

  배란 배는 다 나주배로 행세하는 한 철

  서로 배다른 자손처럼

  영천이니 울산이니 나온 곳은 다 달라도

  그게 족보로 따지면 분명 호형호제할 수 있는

  한 집안 핏줄

  성향을 보면 간단하게 그 집 붙인지 아닌지

  한눈에 다 알아볼 수 있다는데

  겉이 까칠한 놈도 미끈한 놈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시원시원하고 마르지 않는 품성이

  영락없이 모두 나줏집 붙이들이라는 말씀

  시장 어귀 어디쯤 오다가다 만나도

  그게 그러니까 한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은 아니라도

  나도 나주고 너도 나주라고 우기면

  다 일가가 되는 한 철  

  타지에 사는 피붙이처럼

  나주 사는 그 아무개에게 살뜰한 기별이라도

  한 장 넣고 싶은 그렇고 그런 저녁

     -전문(p. 141)// 『다층』 2014-겨울(64)호 수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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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100> 에서

  * 변희수/ 2011년 ⟪영남일보⟫ &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아무것도 아닌, 모든』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