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사람 없는 집/ 길상호

검지 정숙자 2024. 1. 8. 02:12

 

    사람 없는 집

 

     길상호

 

 

  문패만 걸려 있는 집이 있다

  바람 찾아오면 삐이걱 아픈 몸 열어주는,

  사람 없는 그 집에서 풀들만 어지럽다

  흙벽 틈새까지 뿌리 박은 풀잎은 싱싱하다

  지게는 짐 없이도 버려진 삶 더 무거운지

  벽에 기대 온종일 얼굴 돌리지 않고

  나무 가득 쌓여 있던 헛간을 텅 비어

  이 집 먼지만으로 허기 채우고 있다

  거미줄도 세월과 함께 축 늘어져

  아무런 기억 걸려들지 않을 듯한 집

  대문에 꽂혀 있는 오래된 편지 한 장

  언제부터 거기서 주인 기다린 것일까

  여기가 맞는데, 문패 다시 확인해 보고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사연

  저녁 되어도 돌아오는 발자국 없이

  나의 상념도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사람 없는 집에서 문패를 보며

  떠나간 이름의 주인들 몹시 그립다

   -전문(p. 31)// 『다층』 2001년 여름(9)호 수록作  

  ---------------------

  *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100> 에서

  * 길상호/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오동나무 안에 잠들다』『우리의 죄는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