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없는 집
길상호
문패만 걸려 있는 집이 있다
바람 찾아오면 삐이걱 아픈 몸 열어주는,
사람 없는 그 집에서 풀들만 어지럽다
흙벽 틈새까지 뿌리 박은 풀잎은 싱싱하다
지게는 짐 없이도 버려진 삶 더 무거운지
벽에 기대 온종일 얼굴 돌리지 않고
나무 가득 쌓여 있던 헛간을 텅 비어
이 집 먼지만으로 허기 채우고 있다
거미줄도 세월과 함께 축 늘어져
아무런 기억 걸려들지 않을 듯한 집
대문에 꽂혀 있는 오래된 편지 한 장
언제부터 거기서 주인 기다린 것일까
여기가 맞는데, 문패 다시 확인해 보고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사연
저녁 되어도 돌아오는 발자국 없이
나의 상념도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사람 없는 집에서 문패를 보며
떠나간 이름의 주인들 몹시 그립다
-전문(p. 31)// 『다층』 2001년 여름(9)호 수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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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시-100> 에서
* 길상호/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오동나무 안에 잠들다』『우리의 죄는 야옹』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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