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형우_사막의 현상학(발췌)/ 들풀 춤사위 : 김금용

검지 정숙자 2024. 1. 8. 01:46

<2023, 제19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작/ 작품론> 中

 

    들풀 춤사위

 

    김금용

 

 

  등 뒤에서 노을이 안아줄 때 좋아라

  하나하나 살아나서 온몸이 간지러워라

  오색 둥근 바람을 따라 두 팔을 벌리며 달려가면

  두 팔 두 다리도 가볍게 떠오르고

  팔을 벌려 무술 팔괘 모습을 흉내 내다 보면

  독수리도 되고

  다리 하나 올려 곧추서면 우아한 학이 되고

  장난스레 몸을 웅크리면 원숭이도 되고 자유로워라

 

  춤사위엔 가드레일이 없어라

  아무 구분도 필요 없어라

  시선을 마주하면

  민들레도 엉겅퀴도 온몸을 흔들어라

  고양이도 강아지도 날아가던 참새도

  어깨춤 추며 달려라

  서로 밟고 뜯어 먹혀도

  들꽃이 들풀이 함께 춤추는 너른 초원

  껴입었던 옷 벗어던지고

  나를 허무니 좋아라

  붉은 춤사위에 실리니 좋아라

     -전문- 22

 

    * 심사위원: 문효치,  황정산,  유성호(글, p.19)

 

  ▶ 사막의 현상학/ 1-4. 시간과 공간// 3. 물의 지향성(발췌)_이형우/ 문학평론가 · 성결대 교수

  시집 『물의 시간이 온다』의 공간은 아주 특별하다. 대부분의 시집에는 우울과 비애로 가득한 공간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긍정적이고, 밝고 활달한 배경이 많이 나온다. 슬픔마저도 기쁘게 느껴질 정도로 조화로움과 포용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신적인 영역인 기쁨과 몸을 동반하는 즐거움의 공간이 대략 27편, 전 시집의 47%에 해당한다. 또 공간 대립 양상으로 보면, 화자 우위 공간이 24편, 조화 희구 공간이 20편, 사회우위 공간 12편, 자연절대 공간 2편으로 이뤄져 있다. 이는 화자가 주도적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는 시인의 성품과 직결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공간인식에 따라 시간은 빠르고 더디게 운율로 나타나며, 작품을 다채롭게 읽히게 한다.

 

         *

  인용한 시에서는 화해하는 시간이 흐른다. 흩어진 시간이 제대로 풀려 긍정성을 강화하고 있다. 우레와 비가 일어나 만물이 소생하는 모습들을 연출한다. 더 너그러워진 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불모지 사막이 상생과 공존의 상징으로 강화된다. 거기는 '나를 허무는' 「들풀 춤사위」 자리다. 그래서 '서로 밟고 뜯어 먹혀도' 함께 춤출 수 있다. 먹이사슬이 주는 극한성을 화해 공간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생태계의 재발견이다. 개성이 우주성으로 확산된다. (p. 시 22/ 론 33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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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3-겨울(92)호 <특집, 제19회 김삿갓문학상 수상자 김금용 시인> 에서

 * 김금용/ 1953년 서울 출생,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광화문 쟈콥』『넘치는 그늘』『핏줄은 따스하다』『물의 시간이 온다, 중역시집『나의 시에게』, 중역시선집『오늘 그리고 내일今天與明天』, 산림문학상, 동국문학상, 펜문학상 등 수상

 * 이형우/ 문학평론가, 성결대 교수, 저서『창세기부터』『착각』『체질시학』『체질과 욕망』『체질과 언어』『체질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