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밤의 소리들/ 심재휘

검지 정숙자 2024. 1. 8. 02:01

 

    밤의 소리들

 

     심재휘

 

 

  밤은 깊고 사랑은 차다

  앞길 포장마차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두런거림

  토막난 낙지처럼 나는 서울에 살면서

  잠결에 들은 고향집에서의 소리들을 이야기하련다

  사랑은 깊고 밤이 차다

  집이 허공으로 높이 오를수록

  가족들의 잠 아래로 바람소리 거칠어지고

  무호흡증 노부老父의 간헐적인 날숨 사이를

  그 어둡고도 싸늘한 침묵 속을

  유영하듯 밤새 뒤척이는 어린 딸의 꿈 소리 웃기는군

  화물차 소리, 한밤의 택시 소리, 희부윰한 오토바이 소리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저 소리 달리는 소리들은

  언제나 웃기는군 그렇지 새벽인 것이다

  개 짖는 소리는 또 아버지를 깨우고

  저쪽 끝 외곽에서 출발하여 시내를 지나

  이곳 종점에 벌써 다다른 새벽 버스의 낡은 엔진 소리

  눈물나는군

  밤도 지나가고 사랑도 간다

  허공의 집이여 밤의 소리들이여 웃기지 말라

  두려운 건 너희가 아니다 그런데 왜

  끼니때처럼 고향에 들르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베개 젖는 소리

  길에 숨겨놓은 덫 같은지

   -전문(p. 26-27)// 『다층』 1999년 겨울(4)호 수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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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100> 에서

  * 심재휘/ 1997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