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
박형준
어머니는 팔순을 내다보면서부터
손바닥으로 방을 닦는다
책상 밑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둠침침한 침대 밑에 한쪽 손을 쭉 뻗어넣고
엎드린 채로 머리칼을 쓸어내오신다.
어머니의 머리칼은 하얗고
내 머리칼은 짧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것도 있다.
빗자루로 아무리 쓸어내도 방바닥에는
어머니와 내 것이 아닌
흔적이 떨어져 있다.
어머니는 먼지가 가득 묻은 머리칼 한 움큼을 뭉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어머니의 지문이 다 닳아져
우리 둘 외의 다른 머리칼로 변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 달에 한 번 다녀가실 때마다
못난 자식을 두고 가는 슬픔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버스정류장 앞에서 나는 그녀를 보낼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는 게 아닐까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보게 된다.
-전문(p. 18-19)// 『다층』 1999년 여름(2)호 수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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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시-100> 에서
* 박형준/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나는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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