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 박형준

검지 정숙자 2024. 1. 6. 14:51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

 

     박형준

 

 

  어머니는 팔순을 내다보면서부터

  손바닥으로 방을 닦는다

  책상 밑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둠침침한 침대 밑에 한쪽 손을 쭉 뻗어넣고

  엎드린 채로 머리칼을 쓸어내오신다.

  어머니의 머리칼은 하얗고

  내 머리칼은 짧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것도 있다.

  빗자루로 아무리 쓸어내도 방바닥에는

  어머니와 내 것이 아닌

  흔적이 떨어져 있다.

  어머니는 먼지가 가득 묻은 머리칼 한 움큼을 뭉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어머니의 지문이 다 닳아져

  우리 둘 외의 다른 머리칼로 변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한 달에 한 번 다녀가실 때마다

  못난 자식을 두고 가는 슬픔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버스정류장 앞에서 나는 그녀를 보낼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는 게 아닐까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보게 된다.

    -전문(p. 18-19)// 『다층』 1999년 여름(2)호 수록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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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3-겨울(100)호 <다층, 지령 100호 특집 -100> 에서

  * 박형준/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나는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