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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
가지를 물고 꼭대기로 날아가는 새
진보의 끝
망상적인 외로움이 파괴되자
그 누구도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이 실현되었다
너는 전향을 위해 나를 이용하고
나는 너를 위해 열렬히 나를 소모한다
상처를 노출시킨다 변태한다
잠적하기 위해 체모를 밀어버린
우리는 안도감에 젖겠지
세상의 개변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래를 위해 순교 고독 앞에서 동맹)
투쟁과 윤리와 노조는 사어
불가능한 행복을 향해
나는 손오공이 되어
날아오른다
(근두운!)
긴 권태와 짧은 공포여
세상은 더욱 잔인해지고
우리는 우리끼리 마스터 앤 서번트 플레이
-전문-
발문> 한 문장: 문단의 선후배로 장석원 시인을 알고 만나온 지 십수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의 만남이라야 여러 문우들과 어울리는 술자리 혹은 문예지 주최의 좌담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면에서 특별한 인연을 내세우기란 물론 어렵겠지만 만남의 순간마다 내가 받은 인상은 그가 권위를 내세우길 싫어하고 격의 없는 농담을 좋아하며 무엇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선배라는 점이었다. 워낙에 말주변이 없어서 술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앉아 있는 나에 비하자면 그는 활달하고 유쾌하게 자리를 주도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 그가 "교단에서 문학과 시를 가르치면서, 이미지를 회의하게 되었고, 시의 무용함에 좌절했고, 내 언어의 파탄에 경악했다.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강렬했지만 한 걸음도 떼기 힘들었다. 실패했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서 되뇌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내가 어떤 존재를 소신燒燼시켰는지 따졌다. 자유와 해방과 침잠과 고독을 저울질했다. 걷고 걸으며 나를 소진했다. 남은 것이 없었다."(장석원, 「시의 터전으로 김달진 문학상 수상 소감」, 『서정시학』, 2023년 여름호 중에서)와 같이 쓴 글을 읽을 때, 나는 장석원을 다시 보게 된다. 내가 놓친 그의 진지하고 격렬한 내면이 활달 혹은 농담과 겹치면서 비로소 그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대학가 지하 막걸리집으로 되돌아가서 '혁명과 사랑'을 드높이 외쳐 좌중을 이끌던 선배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장석원 시의 특징을 '자유간접화법, 음악적 콜라주, 이미지의 파격적인 흩날림, 비약적인 리듬감'(이찬)에서 찾은 평가는 여전히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참조점임에 분명하다. 어느 때부터인가 내가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기원'에 관한 것이다. 장석원 시의 기원이 '혁명과 사랑'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테지만 2023년이라는 지금의 시간까지 저 기원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은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p. 시 40-41/ 론98-100) (박상수/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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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이별 후의 이별』 에서/ 2023. 11. 30. <아시아> 펴냄
* 장석원/ 2002년 ⟪대한매일⟫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시집『아나키스트』『태양의 연대기』『역진화의 시작』『리듬』『유루 무루』 등, 산문집『우리 결코, 음악이 되자』『미스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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