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지점 외 1편/ 정진혁

검지 정숙자 2023. 12. 28. 00:56

 

    지점 외 1편

 

    정진혁

 

 

  머물러야 할 곳이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서부터 멀고

  어디서부터 가까운지

  알 수가 없다

 

  끝을 보기 위해

  땅끝까지 간 적이 있다

  끝에서 돌아설 때 막막함이 왔다

  가야 할 지점이 어딘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느 꽃가지에 가야

  그 어느 지점에 가야

  당신과 내가 꼭 맞게 만날 수 있을까

 

  한강의 시작은 태백 검룡소라는데

  어디서부터 나는 나고 너는 너인가

 

  이제 너와 나는 끝이야

  그 끝이 어딘지 당신은 아는가

 

  어느 한 점에 오래 머물렀지만

  그곳이 이별이 시작된 지점인지 몰랐다

 

  벚꽃을 보려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면 천국이라는데

 

  어디서부터 왼쪽인지 어디서부터 오른쪽인지

  아직 몰라서 천국을 가지 못한다

 

  여름의 끝과 막다른 길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너의 지점으로 가기 위한

  나는 나의 지점을 모른다

     -전문(p. 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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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의 배치

 

 

  바람과 안이 완전히 뒤바뀌며 왔다

  때마침 밤나무 잎이 서걱거리며 흔들렸다

 

  세상은 잠시 알 수 없는 색채와 공간으로 어른거렸다

  드디어 혼자가 왔다

 

  그림자의 등을 보고 있는 나와 마주쳤다

  발걸음이 희미해졌다

  슬며시 혼자가 왔다

 

  그때 붉은 감이나 하얗게 피어난 국화처럼

  느낌을 가진 것들이 자신과의 작별을 마음에 품었다

 

  혼자를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귀뚜라미가 울고 있다는 가벼움을 관통하며 바람이 지나갔다

  지나가는 것들 사이로 혼자가 왔다

 

  가을의 한가운데 희미하게 남아 있는 색채들을 지우며

  혼자가 왔다

  익명으로 왔다

  한 명의 관조자로 왔다

 

  붉게 사그라드는 황혼 속 슬픔에 잠긴 채 왔다

  어떤 향기는 가 버렸고

  항거는 말없이 왔다

 

  생각하기도 전에 이 모두가 나에게 그대로 왔다

  오롯이 지금 이곳에

  내가 살아갈 첫 번째 혼자는

  내가 잃어버린 혼자이다

 

  혼자를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전문(p.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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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드디어 혼자가 왔다』 에서/ 2023. 12. 15. <파란> 펴냄

  * 정진혁/ 충북 청주 출생, 2008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시집 『간잽이』『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