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44
정숙자
아득히 먼 곳을 동경하기보다 제 몸담은 이 땅을 사랑하겠습니다. 제 영혼을 도와준 풀꽃, 이슬, 바람이 사는 이 흙을 언제까지나 사랑하겠습니다. 그들이 제게 준 기쁨을 갚으려면 몇 생을 바쳐도 부족하겠지요. 이 행성은 제가 아는 한 가장 친절하고 아름다운 별입니다. 제가 죽은 뒤 공기가 되면 이 지구를 지날 때마다 꼬옥 안고 한참씩 머물다 가겠습니다. 돌아보며, 돌아보며··· 가겠습니다. (1990. 9. 21.)
한 번 쓴 물 잘 간수하여 다시 사용할 때 행복하다
스카치테잎 잘 떼어 여기저기 다시 쓸 때 뿌듯하다
헌종이에 생명을 한 번 더 부여할 때마다 산뜻하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매시간
보람 있고 뿌듯하고 행복하다
이런 건 시가 아니고, 책이 아니며, 돈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럴 때마다 나는 가장 행복하고 부유하다
스승께서 ᄒᆞ신 말씀, “시는 꼭 내가 잘 써야만 하는 게 아니다. 누가 쓰든 잘 쓰는 게 문제다.”라고!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의 시 잘 읽으려 인공눈물 넣는 일도 즐거움 중 하나다. 이제 나에겐 시만 남았다. 부모님도, 형제도, 천하의 배필도, 자식도, 벗도 모두 멀리에 있다. 나와 시와 버려진 것들과, 나는 오늘도 이만큼 행복하다. 돌아보며, 돌ᄋᆞ보며··· 나는 어느새 삼십여 년 밖에 와 있다.
-전문(p. 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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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문학』 2023-겨울(5)호 <신작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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