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지나가는 사람들 외 1편/ 안경원

검지 정숙자 2023. 12. 26. 02:11

 

    지나가는 사람들 외 1편

 

     안경원

 

 

  비에 젖은 아카시아 나무가 하얀꽃을 주렁주렁 달고

  비바람에 휘청대는 언덕 아래 빈터를

  서너 바퀴 돌다 작은 카페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점화

  마스크 쓰고 가는 저 꼬부장한 노인네는

  성격이 어떨까 꽤 까탈스러워 보이네

  멋을 한껏 낸 청바지 차림의 저 할머니는

  기분 좋을 때는 어떨까 나쁠 때는 어떨까

  이야기 나누며 다정한 젊은 남녀는

  싸울 때는 어떤 모습일까

  엄마 옆에 바짝 붙어가는 초등학생 딸은

  엄마를 언제까지 의지할까

  꽤 친했던 그 친구와 왜 소식을 끊게 되었을까

  가끔 낯설게 보이다 서로의 가면을 보게 되었을까

  생각이 비슷했던 그는 술 마시면 비뚜름

  떫은 것이 많아 그것도 비슷한 줄 알았는데

  서로 경쟁자였었나

  누군가는 시 쓰는 나를 순수의 이이콘으로 보다가

  실망하여 멀어지기도 했는데 제일 어려운 벽은

  흑백 논리에 갇힌 생각, 검은 돌 흰 돌 두 개를

  몇십 배로 쪼개 쓰려니 끝내 안되더라

  적군/아군으로 가르면 공포스럽기까지 하더라

  사람들 들쭉날쭉 알록달록 동글 세모 네모

  찰흙 반죽 쿠키마냥 속내는 더 제각각이려니

  미세먼지 쓸어내는 빗줄기와 뜨거운 커피의 조합에 

  질식할 듯한 속이 다소 풀리기 시작

  이렇게 또 지나가리라

      -전문(p. 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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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에 쓸리는 물방울은 바다로 간다

 

 

  가끔 내가 바다가 된듯하다

  웬만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이 사람 저 사람 속 터지는 얘기 들어도

  그럴 수 있어 또 지나가는 일일 거야

  나이 먹어가는 내 아들 딸 얘기는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인간관계는 석기시대나 19세기나

  숙명 같은 조직사회 오늘날이나 비슷하게 어렵다

  젊어서는 지나가고 반복되고 회복되는 것임을

  반쯤만 알아 더 힘겨웠을까

  삶이라는 그야말로 끈질기게 억척같이 굴러가는

  수레바퀴가 모든 것을 싣고 가는 것이라고

  도도한 강줄기에 대륙 횡단 열차에 거대 산맥에

  열대 밀림의 숨 막히는 생존 현장에 은유를 든다 해도

  그보다 더한 것임을 노인들은 알게 된다

  그렇다 하다가도 바다를 내버리고

  쫄쫄 흐르는 개울물 아니 컵 안에 든 물이 되기도 한다

  그냥 지나가는 감정이리라

  컵을 박차고 몸을 가벼이 수증기가 되어

  공중을 타고 돌아 바다로 가기로 한다

  또 한 번의 순환이겠지만 물방울이 되어 구름에 들어

  쏘아대는 화살에 독은 안 묻어 있으려니

  맞아 깨어나고 알게 되고 지나간다면

  물비늘 눈물겨운 저녁 바다의 진경이리라

  삶은 모른다 싣고 가는 물방울들의 이야기를

  물방울들끼리 어울려 바다로 가는 막다른 길에서

  모여 바다가 되고 바다를 나누어 갖는 것도

       -전문(p. 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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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바람에 쓸리는 물방울은 바다로 간다』 에서/ 2023. 12. 5. <현대시학사> 펴냄

  * 안경원/ 197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盆地』『오늘 부는 바람은』『검은 풍선 속에 도시가 들어있다』『팔월』『진흙이 말하는 것』『십자가 위에 장미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