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플라스틱 난민/ 이심훈

검지 정숙자 2023. 12. 19. 01:45

 

    플라스틱 난민

 

     이심훈

 

 

  너른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 섬

  다큐멘터리는 실화 영상기록물이다.

 

  강렬한 햇살에 죽이 된 미세플라스틱

  플랑크톤 물고기 바닷새 차례로 먹고

  다시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배달된다.

 

  멸종위기종인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이

  떼죽음으로 해안으로 밀려오곤 했다.

  새우나 해파리 대신 비닐 막으로 코팅된

  플라시틱 조각들이 배 속에 널브러졌다.

 

  나풀거리는 비닐쪼가리를 해파리로 알고 먹은

  거북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비닐 탁구공 알을

  해변 모래밭에 묻고 돌아가 오지 않는다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식당 갈 수 없어

  배달되어 온 점심 한 끼니 비닐을 벗긴다.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 국그릇 반찬 그릇

  담아온 비닐봉지까지 사람마다 예닐곱 넘는

 

  플라스틱 용기 앞의 식사 기도는 고작, 해파리보다 비닐이 더 많아질 바다에서, 영문을 모르는 생물들의 삶을 송두리째 훼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소재는 되지 않게, 낮은 곳으로 흘러가지 말아 달라는 것뿐

 

  미세입자 형상으로 해류에 휩쓸리거나

  해조류에 덕지덕지 들러붙는 먹이사슬로

  오대양에 흘러 다니는 문명이 만든 신대륙

  플라스틱 그대들도 어쩌다 난민 되었구나.

  1억 명 넘어선 세계 난민 틈바구니에서

 

  그런데 어쩌면 좋아

  먹고 난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

  슬그머니 내놓고 돌아서면 잊고 마는

  습성이 찌든 그림자 없는 이 뒤태를.

     -전문-

 

  해설> 한 문장: 「플라스틱 난민」은 "비닐 탁구공 알"을 낳으며 "눈물을 흘리"는 "거북이들"을 보여준다. 이때의 '눈물'은 거북이의 습성이겠지만, 부화되지 못할 '알'을 뱃속에서 밀어내야 하는 고통을 떠올리게 한다. 

  플라스틱은 "문명"의 "신대륙"을 만든다. '쓰레기 섬'이 그것일 텐데, 여기에 "1억 명 넘어선 세계 난민"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플라스틱 용기" 뚜껑을 연다.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자란 바닷고기를 먹으며 일상을 이어간다. 

  이렇듯, 이심훈 시인은 자연생태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존환경까지 파괴되는 모습을 펼쳐놓는데, 급기야 이런 시를 내놓게 된다. 지구촌의 기아와 전쟁, 그 현장이다. (p. 시 48-49/ 론 136) (오정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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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뿌리의 행방』 에서/ 2023. 11. 15. <한국문연> 펴냄

  * 이심훈/ 충남 부여 출생, 2003『시사사』로 등단, 시집『못 뺸 자리』『안녕한가 풀들은 드러눕고 다시 일어나서』『시간의 초상』『장항선』『바람의 책력』, 시문집『느림과 기다림의 장항선 인문학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