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시인과 시'로부터 '서정적 파워와 운율의 룰'까지(부분)/ 노창수

검지 정숙자 2023. 11. 7. 03:01

 

    '시인과 시'로부터 '서정적 파워와 운율의 룰'까지(부분)

 

     노창수/ 시인 ·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前略···

  그런데 말입니다. 어떤 시는 이 비소통의 언어를 표출하면서도 무의식으로 더 파고 들어가 다른 제3의 '자의식'이란 성을 쌓기도 합니다. 이때 당면한 심리기제의 기복에 따라 <시인 ∩ 화자>와 <시인 ∪ 화자>를 넘어서, <감정 ≠ 이미지>, <심리 ≠ 이미지>처럼 단절되고, '의식구조'와 '무의식구조'가 넘나들지만 결국 또 단절로 이어지길 반복합니다. 일부 독자는 이런 시가 난해해 읽을 수 없다고 불평을 하지요. 하지만 그건 현대사회와 인간심리가 다층적인 복합구조란 데서 파생되는 현상이라면 좀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윤리를 떠난 현실문제의 맥락에서 보아 사회학적인 시라 할 수 있겠지요. (p. 24)

 

    ···中略···

  현대 시인들의 심리시, 기호시, 배경시, 무의미시, 해체시, 키치시 등은 이미 해외 문단에까지 이름과 작품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초현대시들은, '너'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소통 불가능한 '나'의 심리적 거리, 아니면 '나'의 의식에서 나와 '너'의 (무)의식 속으로 치닫기를 하는 등 다양한 표출을 합니다. 이들은 주로 현재 이슈화된 생태파괴에 대한 암묵성, 그 작위성에 대한 사회비판 의식을 다루기도 합니다. 심지어 현재의 무한한 자유'가 오히려 '구속'을 초래한다거나, 모든 존재가 누리는 '광활한 우주'가 곧 '감옥'과 같다는 사고를 갖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감옥'이 오히려 '자유'를 구현한다는, 상식으로 보아 어불성설이라 할만한 아이러니적 사유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바늘에 찔려 쏟아낸 핏물로 전환된 '꽃의 환상', 집단적 억압에 의한 트라우마가 길러낸 악마 등, 그 사례가 사뭇 시적이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현대시가 헤짚어 가는 대상은 이렇듯 다기 · 다양한 변주를 합니다. 자아 심리의 '결렬'과 대상의 이미지적 '반란', 독자 감정의 '난자亂刺' 등을 확대시키며 우리가 배워 오고 써왔던 그 '서정'이란 정석의 시를 파괴하곤 합니다. 

  그런 경향은 주로 부조리한 정서에 관하여 '대변담화代辨談話'로 풍자될 때가 가장 적극적이지요. 그러니 이제, 바야흐로 시는 고전적 의미인 '서정의 산물'이라거나 '정서의 순화'라느니 하는 근대적 굴레에서 이미 뛰쳐나와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의 시는 낯설게 하기가 극심해지고 심리의 디테일이 깊어지는가 하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자아 · 타아의 심층적 지층을 펜의 곡괭이로 파 들춰내는 등 실로 할 일이 많아져 보입니다. 그러면서 서정과는 한사코 어긋진 모순적 담론을 다루려고 합니다. 시는 특이한 상징과 풍자의 그릇에 담겨지지만, 그 그릇까지도 쥐락펴락해 만들 듯하는 '메타시' 격으로 전개되지요. 주체나 도구, 그리고 풍자의 골격이 마치 고삐 풀린 말들처럼 비선적인 들판으로 뛰쳐나가고 있는 게 현대시입니다. 그건 시가 숭상해온 전통적 미학보다는 현재적 독창성과 개성에 더 값하려는 시인만의 독창적 이데올로기이거나 방법 상의 전위적 기술을 수용한 결과로도 보입니다.

  잠깐 각설하고, 이와 관련지어 아직도 오래된 시를 가지고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낡게 가르치는 시인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옛 향수에 함몰되듯 돈키호테와 그 기사를 표방한, 선생과 산초 제자가 비틀거리는 로시난테를 타고 시판에 덤벼듭니다. 그들이 삭은 짚으로 꼰 시의 고삐를 쥐고 옛날을 운운하며 시대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음을 보아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시란 누가 뭐래도 <서정적 완력>과 <운율적 룰>을 거친다는 사실입니다. '서정'과 '운율'은 바늘과 실의 관계로 등가적입니다. '완력'과 '룰'은 불평등과 평등, 범칙과 규범, 방임과 규율의 상반 관계입니다. 결국 미학적으로 완미될 바를 희구하는 게 시이지요. 그래 '서정와 운율'은 영원한 시의 전범이라고 봐요. 초현대시의 문법 또한 내면의식이나 비판력 등으로 '완력'을 행사하지만, 여기 '룰'이 담긴 '운율'이 가세한다면 읽는 이의 호응을 더 넓게 할 수도 있겠지요. 아, 머리 아프게 어려운 얘기로 들어가냐고 당신이 또 흰눈을 흘길지 모르지만요. (p. 25~26(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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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문학』 2023-10월(656)호 <권두언> 에서(부분)

  * 노창수/ 전남 함평 출생, 1979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1991년 『시조문학』 추천 완료 & 1992년『한글문학』평론 부문 등단, 시집 『거울 기억제 』 『붉은 서재에서』 등, 시조집 『슬픈 시를 읽는 법』, 평론집 『반란과 규칙의 시 읽기』 『감성매력과 은유기틀』, 저서 『한국 현대시의 화자 연구』, 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