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
정우신
당신과 걸었던
동네를 다시 걸어봅니다
미용실이 부동산으로 바뀌고
오토바이 핸들의 방향
담장 밑의 고양이들
고개가 축 늘어진 나뭇가지
여전한데
그때도 지금도
당신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느린 바람을 잘 맞이하는 사람
버려진 우산을 살펴보거나
머리를 다시 묶고
나비를 바라보네요
당신은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고
나무 그늘을 들여다보듯
깊이를 재어보듯
휘날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읽은 간판이 없을 때
연인들은 눈을 감고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맹세하네요
나는 나뭇잎처럼
색을 바꿀 수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지만
당신과 나란히
날아보는 연습을 합니다
사거리 꽃집이 나타날 때까지
-전문(p. 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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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2022-여름(38)호 <POSITION · 4/ 신작시> 에서
* 정우신/ 201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비금속 소년』『홍콩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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