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이제재
그때 나는 이 층 베란다에 기대어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담배를 피운 적도 있고 새를 흉내 내는 휘파람을 작에 불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위를 쳐다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방학의 나는 기숙사 방에 혼자 있었고 옥상에서 지하 식당까지 그 건물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땅을 보고 걸어가는구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위를 올려다보지 않는구나 여름이면 건물을 에워싼 나무의 잎이 무성했고 어떤 나무는 이 층과 삼 층 사이로 가지를 늘어뜨리곤 했습니다 손을 뻗어 잎사귀를 쥐었다 놓아주는 동안 매미들은 몸을 숨기고 함께 울었습니다 일 층의 휴게실에서 초록빛이 섞인 나무 그림자가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복도에 늘어선 우산들이 말라가는 것을 보며 스물 언저리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지금 다른 곳에서 봄을 맞은 내게 이 모습들이 왜 떠오르는지 모릅니다 나는 사랑에 빠지면 위도 아래도 바라보지 않고 눈이 멀었습니다 그때에는 그 누구의 어떤 말도 사람의 언어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전문(p.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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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2022-여름(38)호 <POSITION · 4/ 신작시> 에서
* 이제재/ 2021년 시집『글라스드 아이즈』로 작품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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