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잠
육호수
거제도
능포 바닷가
옥수 교회 본당
나무로 된 둥근 강대상 안쪽 면엔
미당이문으로
열리고
닫히는
꽤 널찍한 수납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는 찬미 예수 1000 악보나
고장 난 마이크 케이블이나
오래된 설교 원고나
아주 오래된··· 말하자면
태어나기 전의 날짜가 적혀있는 주보 같은 것들이
들어있곤 했다
권사님들도 이곳은
잘 열어보지 않는 것 같았다
어린이부 예배가 끝나고
교회 마당에서 숨바꼭질을 할 때도
그곳에 들어가 몸을 말고 숨어있으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했다
어떤 날엔 그러다 잠들어
깨어보니
주일 예배 한가운데
숨어있었다
찬송 소리가
모두 내게 오는 것 같은
어둠 속이었다
까마득히 나는, 오래전부터··· 말하자면,
이곳의 어둠보다 먼저
이곳에 와 있었던 것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그리움이었지만
익숙해서
곧 다시 잠에 들었다
-전문(p. 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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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2022-여름(38)호 <POSITION · 4/ 신작시> 에서
* 육호수/ 2016년 '대산문학상' 시 당선,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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