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134340' 외 1편
송시월
거울의 심연
다중채널로 증식되는 너는 누구인가
표면 평균온도 섭씨 464도의 금성이 동쪽에서 뜬다
아름다운 고리로 나를 휘감으며 토성이 뜨고 지구보다 푸른
해왕성이 뜬다
에리스에게 막내 자리를 빼앗긴 소행성
서러운 명왕성(플루토)이 '134340'의 번호를 달고 뜬다
늦둥이의 배고픈 울음
설핏한 햇살의 품에서 설익은 끝물 사과 한 알
오빠들 꽃 편지 전달하기 위해 골목길 에둘러 구르고 구르는
종일 꽃잎 날리다가 빛살 빠져나간
허방 딛는 웜홀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라 분노하라 분노하라"*
나를 영사기처럼 풀어내는 저 어둠 벽,
돌멩이를 던지자 조각조각 피를 흘리는 내 서사
때로는 측은한 듯
실루엣 손으로 내 가슴에다 동심원 같은 파문을 그리며
사막의 낯선 구릉 헤쳐 가는 너는 누구?
영혼의 부동액, 눈물로 흘리는
도플갱어?
-전문 (p. 52-52)
*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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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수의 산통은 진행형이다
산통을 앓는 간수
죄수를 낳아 두부를 먹인다.
세상을 향해 첫발 떼는 죄수, 두부를 먹으며 반듯하고 새하얀 꿈을 꾼다.
콩과 몸을 섞은 후 간수는 두부를 조산하고 바다에 투신한다.
형체만 흐물거리다가 인큐베이터 안 보자기에 싸여 반듯하게 자란 두부,
자기의 방 안팎으로 흰 페인트를 칠하고 실험실을 만들어 간수를 채운다
죄수를 불러들여 함께 간수 속에서 하얗게 하얗게 탈색되며 부추꽃 모양의
'단백질'이란 물질로 일렁일렁 피어난다.
간수는 이 과정을 태아일기처럼 세밀하게 기록한 후
바다에 투신하여 바닷물에 몸을 씻고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우주를 품는 양수가 된다
간수가 낳았던 죄수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지만
어미가 그리워 바다로 가서 아기고래가 된다.
바닷속 하늘엔 고래자리가 뜬다. 어미의 양수에선 새끼고래가 놀고,
죄수들이 고래를 잡으러 몰려든다. 간수는 죄수들에게 고래를 먹인다.
오늘도 산통을 앓으며 다란성 쌍둥이를 수도 없이 분만하는 간수, 신명 난 춤으로 파도를 낳고 죄수와 두부를 낳고 해와 달을 낳고 북극성과 은하수를 낳고 온갖 종류의 물고기와 해초들을 낳고 꽃게와 장둥어를 낳아 뛰고 기고 뛰고 기고 또 낳고······ 낳고······ 낳고······
간수의 산통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전문(p.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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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간수의 산통은 진행형이다』 에서/ 2023. 11. 1. <시산맥사> 펴냄
* 송시월/ 전남 고흥 출생, 1997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12시간의 성장』『B자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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