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의 방식
성향숙
살아 있지만 살아 있음을 간과하면 불현듯
어둠은 어둠을 견인하고
나는 나를 추월해 흰 국화로 환생한 적 있다
오아시스를 덮고 내 장례식장을 장식한 적 있다
몸이 분리되어 대지와 허공으로 한없이
사이가 벌어진 적 있다
한때의 감정으로 펄럭이던 때
벚꽃이 봄을 점령하듯
겁 없이 달려드는 눈빛 살피는 일
가로수의 안녕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 몸 밖을 튕겨 나온 혈액은
장송곡처럼 흘러
달을 추월하고 꽃보다 빠르게 나무를 추월하고
겨우 환생한 사막여우처럼 눈을 동그랗게
멈춘 숨을 토해낸 적 있다
목숨 건 추월엔 경계가 없다
달빛의 지붕에서 낯선 빙하의 담벼락까지
시계는 흰 벽에 꽃으로 피고
오늘을 추월한 오늘처럼
미지의 낯선 행성은 나를 맞아줄 것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어느 순간, 시인은 살아 있지만, 그 '살아 있음'에 대해 무감각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나이 때문이고, 일에 대한 중압 때문이며, 점차 무기력해지는 감각들의 소진 때문이다. 그때 시인은 자신의 일상이 끝없이 밀려오는 '어둠'을 발견하는데, 그 속에서 한없이 움츠러들고 점점 더 혹독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흡사 소금에 절여진 배추 같다. '죽음 이미지'라는 단순하고 간결하며 명백한 사건이 찾아온 것이다.
시인에게 죽음의 체험이란 "벚꽃이 봄을 점령하듯/ 겁 없이 달려드는 눈빛"을 살피는 일이다. "가로수의 안녕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 몸 밖을 튕겨 나온 혈액"처럼 "달을 추월하고 꽃보다 빠르게 나무를 추월하"는 일이다. "겨우 환생한 사막여우처럼 눈을 동그랗게/ 멈춘 숨을 토해"내는 일이다.
(···中略···)
죽음으로 향한 '바라봄'은 '경계 의 없음'이라는 삶의 여백을 확연히 드러낸다. 그 여백은 "달빛의 지붕에서 낯선 빙하의 담벼락까지" 상당히 넓은 범위에 걸친다. 죽음은 도처에 산재한다. 지금 여기에 있다가도 내일 저곳에서 피어오른다. '미지의 낯선 행성'과도 같은 죽음이란 시인에게만큼은 내가 나를 관장할 수 있는 마지막 소실점이다. (p. 시 106-107/ 론 141-(中略)-142)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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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에서/ 초판 1쇄 2019. 12. 15/ 초판 2쇄 2020. 3. 13. <푸른사상사> 펴냄
* 성향숙/ 경기 화성 출생, 2000년⟪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 2008년『시와반시』로 등단, 시집『엄마,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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