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외 1편
곽애리
입 다문 아기의
윗입술은 봉우리
아랫입술은 수평선
오호, 세상에,
아기의 입에서는
별들이 쏟아지고
흙이 아직 묻지 않은 작은 발로
걸음마를 시작하는, 와아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서
커튼을 보며, 와아,
담장 넘어가는
줄무늬 다람쥐를 보고도
와아, 와아
계란 노른자가
밥 위에 미끄러져도
와아,
아기가 토해놓은 별들을
치마 폭에 주워 담으며
나도 그만, 와아, 와···
세상이 온통 와아 천지인데
나는 잃어버린 느낌표
오래 감겨 있던 눈,
오래 닫혀있던 가슴에
아기 천사가 뿌려 놓은
초록 별 한 무더기
-전문(p. 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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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에 당신을 펼치는 날
나는 당신을 접을 수도 펼 수도 입맞춤할 수도
기차역에서, 산길에서, 어슬녘 도심을 걸으며 언제나 어디에서나
접어서 들고 다니는 나의 고독처럼
속주머니 속에 당신을 넣고 걷는 오후
사람 그림자라곤 없는 비 내리는 강둑
물가에 심어진 나무 아래 우산을 받치고
마음껏 당신을 펼치는 날
비닐우산 위에 떨어지는 동그란 눈물
마지막 손으로 훔친 것은 웃음이었네
가슴에 묻었다면 헤어짐은 없어
물여울에 비친 당신을 접어
발걸음 옮기는데
당신이 묻는군요
네,
슬몃, 하늘을 올려보다가
젖은 걸음 옮기는데
또다시
당신이 묻는군요
네
-전문(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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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주머니 속에 당신』 에서/ 2023. 10. 31. <황금알> 펴냄
* 곽애리/ 강원 평창 출생, 1985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 2017년『문학청춘』으로 등단, 현) 뉴욕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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