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외 1편
성향숙
비틀거리다 넘어지고
비틀거리다 또 쓰러지고
비틀거림은 비틀비틀 전진한다
나는 너를 그렇게 배웠어
너도 나를 그렇게 사랑했지
나의 자전은 어설프지만
태양 쪽으로 기울어 너를 훔쳐보기 위한 몸부림이야
혼자여도 괜찮아
자전의 기술은 습득한 물건처럼 내 것이 되므로
연못 위에 붉게 선 플라밍고는 한쪽 다리로
오래도록 한 곳을 응시한다
바람결에 리듬을 맞추는 노련함으로
키 큰 나무가
한 다리로 수천 년 살아가는 자세야
등 뒤에 붙어 따뜻함 즐기듯이
태양과 지구 사이 팽팽한 공기들의 저항을
다정하게 유희하지
비틀거려도 어색하지 않아
비틀거림으로
비틀비틀 언제든 다시 살아나지
-전문(p. 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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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안녕하십니까?
잠깐만,
들판을 지나 구름을 따라가다 접질려 발목이 삐었다
빛나는 햇살이 이마에 부딪쳤기 때문이야
대지에게 무한 신뢰를 보냈기 때문이야
소복하게 부푼 멍과 푸른 발등과
시린 발목을 가만히 직시하는데 우두커니
말뚝에 묶인 줄 끝에 붙어
염소 한 마리 깔깔깔 노래 한 소절 부른다
말뚝을 몇 바퀴 빙빙 돌면서
충분해
달달한 감동은 아니지만
뒤집힌 바퀴처럼 가끔 헛발질의 리듬을 음미하는 것
우울을 전달하는 절름발이 걸음으로도
자유로울 수 있지
아침의 눈인사와 지난밤의 잠자리, 손에 쥔 휴대폰
길바닥에 숨은 크고 작은 안녕들
원초적 감정과 본능들
일이 꼬이면 뒤돌아 몇 발짝 절뚝이며 걸어보는
어쩐지 슬픈 뒷모습
들판의 염소가 감긴 줄을 풀다가 말뚝에 머리 찧고
질식한 흰 침을 흘리고 서 있어
고요하고 절망적인 평화, 역겨워
염소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야
-전문(p. 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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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에서/ 초판 1쇄 2019. 12. 15/ 초판 2쇄 2020. 3. 13. <푸른사상사> 펴냄
* 성향숙/ 경기 화성 출생, 2000년⟪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 2008년『시와반시』로 등단, 시집『엄마,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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