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비의 축제/ 김병권

검지 정숙자 2023. 10. 14. 01:59

 

    비의 축제

 

     김병권

 

 

  비가 오옵니다 수직으로 깨끗한, 파티를 합니다

  파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방울 머금은 꽃잎에게 물어봅니다

 

  먹은 것도 아니고 먹지 않은 것도 아닌

  한 모금 물 같은 것, 입에 넣은 뒤 오래 젖게 하는 것,

  삼키지 않고 가만히 음미하는 것,

 

  호박꽃의 이름값과 버석 말라 가는 참외 줄기와

  땅속 비벼 간질거리는 오이 가지 뿌리들,

  연록빛 깔고 앉아 온몸 푸르도록 머금은 텃밭의 생명들과

  빗소리에 어울리는 에스프레소 한 잔,

 

  스친 것도 아니고 스며든 것도 아닌

  한 줌 흙과 바람의 소리 같은 것, 살아 숨 쉬는 하늬바람 살결 닿는 것,

  뼛속 마디까지 빌려 흠뻑 취하는 것,

 

  박새 울음 값과 논 가 부리 숙여 거니는 흰 왜가리

  솔잎 떨어진 거지에만 앉아 우는 까마귀 떼,

  숲속 생 호흡하는 가슴 깊은 짐승들과,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떠올린다면

  당신에게 나는 어떤 피티여야 할까요

  물 위로 또 비가 내립니다

      -전문(p. 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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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목문학회 사화집 『즐거운 곡선에서 배회 중』에서/ 2023. 8. 10. <파란> 펴냄 

  * 김병권/ 2014년 『서정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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