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득이 많은 책을 버려야만 했다
차주일
줄어든 넓이로 이사를 준비하며 부득이 많은 책을 버려야만 했다. 버리는 기분은 혼란스러웠지만 간단했다. 일개미 군집 같은 온갖 문예지를 버렸고, 여왕개미 같은 유명인 우선으로 시집을 버리고서야 작은 트럭에 패배의식을 실을 수 있었다. 가까스로 입주한 토방의 원주민이 개미이니 기숙이나 동거가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혹여 얼어 죽을까 보일러도 틀어주었다. 창문은 제 너비보다 몇 배 넓은 굴절을 풀어놓았다. 햇빛이 종착점을 찾아 몇 배 넓은 햇볕으로 깨어지는 날, 반찬을 점령한 개미를 검지로 눌러 죽이고 말았다. 이로써 내 검지는 방향 가리키는 것을 잊었고 우리는 향방을 살피고 숨고 추적하는 적이 되고 말았다. (p. 44-45)
크레인에 오른 사람이 전지하고 있다. 흔들림이 제거된 나무에 까치둥지가 열리지 않듯 사람들 시선도 낙과할 것이다. 대칭을 잃은 뿌리가 고사했다는 소식을 듣곤 했다. 곧음은 우듬지를 흔들지 못하므로 빗방울도 목적지를 잃을 것이다. (p. 88)
낟알 이삭을 주워 볍씨로 삼던 사람은 삼대의 밥을 책임지던 사람이었다. 아무리 등허리를 펴도 꼿꼿이 펴지지 않는 굽은 목이 매달려 있었다. 벼 이삭을 닮은 그의 자세보다 지극한 기도와 독립선언문을 본 적 없다. 늙은 아내를 잃고 무덤 앞에 서서 고갤 숙인 혁명가革命家의 혁명가革命歌를 들은 적 있다. 요즘 모를 감정이 내게 집중되는 것은 혁명가革命家의 자세보다 혁명가革命歌가 더 애절했기 때문이다. 무엇에 집중하는 자세가 무엇에서 탈출하는 기도이니 내 혁명일 또한 멀지 않은 것 같다. (p. 123)
어떤 풍경은 가끔 마음에 들어 신념이 된다. 이 점빵은 화려함과 앞을 향해 떠도는 내 신념을 마음 외진 구석에 자리 잡게 해 다짐이 되게 했다. 그런데 이 골목을 떠나 더 깊은 변두리 골목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전세보증금을 문예지 발간비와 원고료 지급 등으로 다 까먹었기 때문이다. 더 구석진 곳, 더 어두운 곳, 쌈박질 소리가 더 큰 곳을 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신념은 맨 앞자리, 더 밝은 곳, 노랫소리가 큰 곳에 진열될 수 없는 모사품이므로 후미진 곳은 내가 화룡점정 할 수 있는 최고 길지일 것이다. (p. 164)
기도는 인간의 삶으로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는 일상이다. 그러므로 삶으로 증명되지 않은 기도는 성스럽지 못하다. 기도는 거짓 없는 참된 마음이어서 자신을 위한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로써 이기심은 참된 마음이 아니란 게 증명된다. 기도는 내가 누군가를 근심해 주는 마음이며, 나를 기원해 주는 누군가의 마음이다. 그리하여 타인이 나는 걱정하면 내가 이루어지고 내가 타인을 걱정하면 타인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간절한 기도문일지라도 타인을 이룰 수 없다. 다만, 나를 위해 기도하는 타인의 진심 어린 자세를 지켜본 사람이 스스로 바뀌는 것이다. 신도 흉내 내지 못하는 진심 어린 자세에 어찌 사람이 바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심어린 기도에는 기도문이 필요 없다. 기도는 내 진심 어린 자세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의식이며, 기도문은 깊이 생각하고 궁리한 마음을 정리하는 앎이나 깨달음일 뿐이다. 기도와 기도문은 아주 다른 것이다. (p. 171-172)
바람 없이 흔들리는 물방울을 마를 때까지 지켜본 적 있다. 둥근 수막에 햇빛 한 점이 찍혀 있다. 지구가 해를 들이기 위해 자전하듯 물방울이 햇빛 한 점을 들이기 위해 오대양의 파도와 육대주의 등고선처럼 흔들렸다. 물은 자신의 성분과 상극인 햇빛을 들임으로써 사라지는 존재였다. 상극과 대치함으로써 나를 사라지게 하는 게 새롭게 태어나는 것임을 보았다. 햇빛도 물도 함께 사라졌지만, 물의 후생과 빛의 후생은 얼룩으로 하나였다. 얼룩은 태막이 터진 모습이었다. 그때 보이지는 않았으나 정신 같은 무형이 태어난다는 걸 알았다. (p. 192)
종이책에는 상상을 열어주는 감촉이 있다. 눈이 먼다고 해도 책의 어둠을 읽을 수 있다. 안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접촉의 실물이기 때문이다. 접촉만으로도 타인의 생각이 느껴지는 이유는 접촉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이에 기록된 인류 역사는 기록 일부를 기억하는 역사가 아니라 모두가 간섭하고 첨삭한 기록을 기억하는 역사이다. 이렇듯 표기할 수 없는 느낌을 산 채로 맡길 수 있는 유일신은 종이책뿐이다. 종이책만이 과거를 미래이게 하는 시조始祖이다. (p. 205)
200여 나라에서 약 55개 나라가 삼색 국기라니 실로 헷갈릴 만하다. 하물며 삼색에 대한 의미가 나라마다 다르다. 같은 백색을 두고 어느 나라에서는 신앙을, 이웃 나라에서는 평등 혹은 평화를 상징한다. 이는 다양한 문화의 상징성 때문이다. 맨 처음 삼색기를 주창한 나라가 네덜란드라고 한다. 패권을 가진 가문이나 단체의 어지럽던 문장紋章을 삼색에 담았다고 하니 나라마다 색깔이 상징하는 바가 다름은 당연할 것이다. 이것이 각 국가가 주창하는 자주이지만, 삼색기 형식은 몰개성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다. 정치 형태나 사회 구조가 거기서 거기이니 몰개성일 수밖에 없는 게 문화라는 역설 또한 생각하게 한다. 네덜란드는 적, 백, 청색으로 국기를 만들어 패권국의 위상을 제고했다. 그러나 바닷바람과 햇볕에 탈색되는 붉은색을 오렌지색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p. 23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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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주일_산문집 『출장보고서』 2023. 8. 17. <포지션> 펴냄
* 차주일/ 전북 무주 출생, 시집『냄새의 소유권』『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합자론合字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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