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검림刀山劍林
박완호
내 언어의 행간 사이에 숨어 있던
자객들은 다 어디로 떠나갔을까?
살짝 닿기만 해도
뻘겋게 핏물이 배어날 것 같은
날 선 말들, 한 번 칼질로
두꺼운 어둠을 동강 내려던
정신은 표적을 놓쳐버리고
지금은 어디쯤 고꾸라져 있나?
허무를 꿰뚫으려는 시의 언어에는
치명적인 독 하나쯤은 묻어나야 하는데
나는 무슨 말의 독을 차고
세상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려는가?
떨어져나간 자객들을 다시 불러들이려면
언어의 행간마다 독 오른 칼날을 꽂아두고
서슬 푸른 눈빛을 안으로 갈무리해 가며
표적을 노리는 자객의 숨결 같은
적막 가운데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
비수를 감춘 자객이 숨기 좋은
시인의 정신은
어디나 도산검림刀山劍林이다.
-전문(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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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사람』 2023-가을(11)호 <poem & poetry/ 기발표작> 에서
* 박완호/ 1965년 전북 진천 출생,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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