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도산검림(刀山劍林)/ 박완호

검지 정숙자 2023. 9. 4. 02:00

 

    도산검림刀山劍林

 

     박완호

 

 

  내 언어의 행간 사이에 숨어 있던

  자객들은 다 어디로 떠나갔을까?

  살짝 닿기만 해도

  뻘겋게 핏물이 배어날 것 같은

  날 선 말들, 한 번 칼질로

  두꺼운 어둠을 동강 내려던

  정신은 표적을 놓쳐버리고

  지금은 어디쯤 고꾸라져 있나?

  허무를 꿰뚫으려는 시의 언어에는

  치명적인 독 하나쯤은 묻어나야 하는데

  나는 무슨 말의 독을 차고

  세상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려는가?

  떨어져나간 자객들을 다시 불러들이려면

  언어의 행간마다 독 오른 칼날을 꽂아두고

  서슬 푸른 눈빛을 안으로 갈무리해 가며

  표적을 노리는 자객의 숨결 같은

  적막 가운데 버티고 서 있어야 한다.

  비수를 감춘 자객이 숨기 좋은

  시인의 정신은

  어디나 도산검림刀山劍林이다.

      -전문(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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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 사람』 2023-가을(11) <poem & poetry/ 기발표작> 에서 

  * 박완호/ 1965년 전북 진천 출생,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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