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힘
복효근
철로 한켠에 침목들 쌓여있다
하나 같이 일자로 입을 다물고 있다
세상은 열차처럼 떠들어대는 자들의 몫인 것 같지만
달리는 자들의 세상 같지만
침묵하는 자들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한 생을 한 자리에서 누워 침목은 침묵으로 말한다
침목은 지축을 울리며 달리는 열차의 굉음을
제 몸으로 받아내어 잘게 잘게 땅으로 분산시키고
이윽고 침묵을 남긴다
지반이 꺼지지 않도록
철길을 받치고 종착역까지 옮겨주는 것은
저 말 없는 것의 힘이려니
저 켜켜이 쌓여있는 침목들은 어디론가 실려가
누군가의 길이 될 것이다
떠들 게 없어서가 아니라
떠들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안다
침목 혹은 침묵
-전문(p. 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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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사람』 2023-가을(11)호 <poem & poetry/ 기발표작> 에서
* 복효근/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 시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예를 들어 무당거미』『중심의 위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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