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신상조_산문집『시 읽는 청소부』/ 섬이 낳은 바다 : 이정란

검지 정숙자 2023. 7. 11. 02:44

 

    섬이 낳은 바다

 

    이정란

 

 

  누가

  생각을 잠그지 않아

  바닷물이 갑자기 불어났다

 

  섬에서 또 하나의 섬이 풀려나왔다

 

  눈앞에 보이는 물체여서

  기억하기는 쉽다

  그를 잘 잊으려면

  눈앞에 계속 있게 놔두어야 한다

 

  섬과 섬은

  서로의 바깥으로

  서로의 안을 만들고 있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비가

  바깥의 가장 안쪽에서 내리고 있다

 

  모든 상황은

  빗줄기 속에 들어 있는

  바람이 방향을 다 알기 전에 발생한다

    -시집 『눈사람 라라』, 2023, 시작. (전문)

 

  ▣ 눈사람 라라로 읽는 비밀의 정원/   시인 이정란과 김상열의 비밀의 정원(발췌)_신상조/ 문학평론가

  창호지에 어른거리는 달빛이며 수양버들과 대나무 숲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수면으로 난분분하게 떨어진 벚꽃 잎의 장관, 차가운 눈밭에서 언 귀를 내민 듯한 풀잎··· 이층의 작업실에서 작가가 내려오길 기다리는 잠깐 동안, '비밀의 정원' 연작에서 보았던 그의 '자연'이 떠올랐다. 낡은 폐교의 작업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하늘과, 집에서 작업실까지 오고 가는 내내 펼쳐질 과꽃과 벚꽃과 감꽃이 순차대로 피고 지는 국도변의 풍경이 지금의 작업과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선 풍경들, 그것은 치명적 매혹이라기보다 근원적 순수함에 가까운 아름다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의 그림을 놓고 "자연에 대한 시각적인 재현을 넘어 자연 그 자체의 본성을 추구하는 지점으로 진입했다"라는 세간의 평은 우선 그러한 지점에 착목했을 터였다. (p. 시 122-123론 114/ 그림 123) 

 

  * 블로그註:  위 시와 짝을 이룬 김상열 화백의 작품(Secret garden acrylic on canvas 218×67㎝ 2011)은 책에서 감상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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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상조 산문집 『시 읽는 청소부』에서/ 2022. 10. 1. <시와반시> 펴냄
  * 신상조/ 경북 구미 출생,
2011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등단, 평론집『붉은 화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