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강인한_비평집『백록시화』/ 대문에 태극기를 달고 싶은 날 : 강인한

검지 정숙자 2023. 7. 2. 01:53

 

    대문에 태극기를 달고 싶은 날

 

    강인한

 

 

  포켓이 많이 달린 옷을

  처음 입었을 때

  나는 행복했지.

  포켓에 가득가득 채울 만큼의

  딱지도 보물도 없으면서

  그 때 나는 일곱 살이었네.

 

  서랍이 많이 달린 책상을

  내 것으로 물려받았을 때

  나는 행복했지.

  감춰야 할 비밀도 애인도

  별로 없으면서

  그 때 나는 스물 일곱 살이었네.

 

  그러고 나서 십 년도 지나

  방이 많은 집을 한 채

  우리 집으로 처음 가졌을 때

  나는 행복했지.

  그 첫 번째의 집들이 날을 나는 지금도 기억해

  태극기를 대문에 달고 싶을 만큼

  철없이 행복했지.

  그 때 나는 쓸쓸히 중년을 넘고 있었네.

    (1984. 6. 17)

 

 

  ▣ 3부/ 자작시 해설/ 우리 집의 독립기념일> 전문: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보면 나는 상고머리에 스웨터를 입고 있다. 가로로 잿빛 굵은 줄이 그어진 밤색 스웨터로 누나가 짜 준 단벌 옷이었다. 그 스웨터를 입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2월인데도 누나의 분홍색 털목도리를 두르고 추위에 떨던 그날의 기억이 그 사진을 보면 새삼스러워진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교복을 처음 맞춰 입었을 때의 기쁨이란 요즘 자라나는 애들은 아마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윗저고리에 속주머니가 달려 있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금빛 샛노란 교복 단추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기도 하고, 모표와 학교 배지도 그렇게 열심히 닦았었다. 3년 동안 입을 옷이거니 해서 미리 좀 헐렁하게, 넉넉한 품을 재어 입는 옷이건만 내 몸에 맞춘 옷이란 점에서 철없이 좋았다.

 

  우리 집이 셋방으로 떠돌기 시작한 건 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처음엔 단독 전세에서, 대학교를 졸업할 땐 단칸방으로 줄어들었다. 졸업 후 직장을 가지고 나서야 겨우 다시 방 세 개짜리 전세로 불릴 수 있었는데 그 시절에 결혼도 하고, 아이들 셋을 연년생으로 두게 되었다.

 

  내 나이 열 한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당신께서도 집 한 채 없이 늘 관사로만 떠돌아다니던 걸 생각하면 집이야 일찍 가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허물없어지곤 했었다. 그러다가 도시로 옮겨와 살게 되니 그게 아니었다. 양옥집의 이층에 어머니, 애들 셋, 우리 내외 여섯 식구가 숨도 크게 못 쉬고 살다가 집주인이 여섯 달 만에 방을 비워 달라고 하지 않는가.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그동안 저축했던 돈이라고 해야 새 집을 사기엔 턱없이 적었다. 여기저기서 빚을 얻고 큰 무리를 해서 변두리 구석진 곳에 어렵사리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그 청명한 10월의 어느 토요일.

 

  10월은 예전엔 국경일이 많아서 좋았다. 1일은 국군의 날, 3일은 개천절, 9일은 한글날, 24일은 국제연합일. 그 무렵 국경일의 날짜에는 달력마다 곱게 태극 마크가 찍혀 있지만 요즘은 그냥 날짜의 숫자만 붉은 잉크로 찍혀 나온다. 나는 10월 달의 날짜 중 그 하루를 찾아 태극 마크를 그려 넣었다.

  "아빠, 그 날이 무슨 날이야?"

  막내의 물음에 나는 엄숙하게 말해 주었다.

  "우리 집 독립기념일!" 

   (200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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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인한 비평집 『백록시화』에서(p. 시 299-300(전문) / 론 300-301)/ 2023. 6. 15 <포지션> 펴냄

  * 강인한(본명, 강동길)/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 시집『이상기후』『불꽃』『전라도 시인』『우리나라 날씨』『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푸른 심연』『입술』『강변북로』『튤립이 보내온 것들』『두 개의 인상』, 시선집 『어린 신에게』『신들의 놀이터』『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시 비평집『시를 찾는 그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