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따라 하는 시, 비슷비슷한 말 잔치!(부분)/ 조창용

검지 정숙자 2023. 6. 8. 02:13

<권두언> 中

 

    따라 하는 시, 비슷비슷한 말 잔치!(부분)

 

    조창용

 

 

  (前略)

 시가 갖는 미덕은 사람의 감성을 끌어내어 서정적 교감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시의 지나친 '미화주의'가 개인을 우선시하는 것이 미덕이랄까? 그래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흉내내는 시들이 많아 읽는 맛을 반감시키는 듯하다.

  자칫 좋은 시, 평단의 주목을 끌려면 무조건 '낯설게 하기'의 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지나친 관념의 결과이다. '낯설게 하기'는 새로운, 익숙하지 않은 표현을 요구한다. 현대시작법의 한 방법이자 현재 우리 시단을 아우르는 작법이다. 이러한 시작법은 대표적으로 오규원 시인의 <현대시작법>에서 그 개념화를 선보이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확장이 되었다. 이제는 대다수 시인들의 보범답안이 마치 '낯설게 하기'인 것처럼 굳어져 있다. 이는 대단한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낯설게 하기'의 시작 태도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무릇 자기 세계를 갖춘 시인이라면 남이 하는 '낯설게 하기' 개념을 달리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언어를 비튼다고 무조건 '낯설게 하기'가 아니다. 이미 '낯설게 하기'는 수십 년 유통된 방식이라 큰 의미가 없다. 아직도 우리의 모더니즘시들은 이상이나 조향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색채를 만들어낸 시인이 김춘수 시인으로 '무의미시'라는 새로운 발견을 창조했다. 80년대 후반 시운동 동인들이 부르짖은 현대시의 모랄들은 수많은 시인들이 젖어들면서 꼴라쥬, 형태시, 반어적 상상력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를 써왔지만 현재까지도 이상이나 조향의 시를 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황지우, 이성복, 김혜순, 기형도 등이 보여준 언어적 색채감이 한동안 우리 시단을 지배해오기도 했다. 그래도 이상과 조향의 혁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이제 우리 시단도 보다 더 과감한 혁신의 시를 쓰는 분들이 나와야 하며 또 나아가 사람의 기본적인 감성을 건드려주는 서정시 또한 현대에 걸맞은 모습으로 다양화되어야 할 것이다. 흔히 말하는 소월이나 목월, 서정주 풍이 아니더라도 도시 서정에 맞는 감성의 서정시로 탄생해준다면 얼마나 좋으랴.

  우리의 목마름은 언제까지나 이어진다. 그게 또 현실이다. 무조건 닳은 모더니즘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서정시의 변화, 리얼리즘의 재무장 등 보다 더 치열한 현실 반응의 시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p.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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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2023 (29)호 <사이펀의 창>에서

  * 조창용/ 시인, 사이펀문학상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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