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전문>
징후를 찾아서
황정산/ 본지 주간
현대 사회는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 사회이다. 그러한 질문을 하지 않고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나 말고 누군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미 만들어 놓고 있다. 우리는 "왜?"라는 질문 없이 태어나고 공부하고 또 사회에 입문한다. 왜 사는지 모를 물건을 사고, 왜 만나야 하는지 모를 사람을 만나고,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 채 돈을 벌고 재산을 모은다. 나의 욕망은 누군가의 욕망의 대리물이거나 모사일 뿐이다. 이 가짜 욕망이 상품을 만들고 상품을 소비하고 스스로 상품이 되게 만든다. "왜?"라는 질문은 주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나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찰하는 것은 바로 이 질문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체가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대세를 추수하고 트렌드를 쫓기 바쁘고 브랜드에 대한 맹신으로 아무도 이 질문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언어를 통해 주체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고 "왜?"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일이다. 그것은 왜라는 질문을 망각하게 하는 언어의 상투성과 자동성을 극복하고 세상을 발견하는 언어의 힘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시인은 나의 눈으로 나의 감각으로 나의 인식을 통해 세상의 여러 징후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시단은 점차 "왜?"라는 질문이 사라져 가고 있다. 왜 써야 하는지 성찰하기보다는 대세를 추종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세에 따라야 신춘문예도 당선되고 훌륭한 작품이라 조명해주고 결국 상까지 받을 수 있다. 대세를 따라야 현대적이고 세련된 언어라는 칭찬을 받고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낡은 작품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시인들마저 이렇게 대세라는 시대적 조류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시인들이 왜 시를 써야 하는지 망각한 채 비슷비슷한 작품을 양산하고 있다.
시인들이 너무 많다고 더러 얘기하지만 시인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왜 쓰는지 질문을 잊은 시인들이 많은 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이 왜라는 질문을 다시 하고자 한다. 왜 시인들이 시를 써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은 시인들이 우리 사회의 여러 징후를 찾아가는 노력과 다르지 않다.
우리 『P. S』는 질문이 사라진 시대에 "왜?"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는 바로 이 '징후 찾기로서의 시 쓰기'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 쓰기를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걷어내야 한다. 학맥과 나이와 등단지와 문학적 조류에 따른 차별과 무리 짓기를 과감히 탈피하여 모든 시인이 함께 모여 활동할 수 있는 개방적인 다양성의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 『P. S』가 할 역할이 바로 그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이제 제2호가 발간되었다. 창간호가 이 문예지를 만들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2호부터는 본격적으로 모든 시인들에게 활동의 장을 열어주고자 한다. 이 공간에서 시의 장르와 세대와 문학적 경향의 구별 없이, 우리 사회의 숨겨진 징후를 발견해 내는 시인들의 예리한 눈과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이 또 다른 시적 징후로 나타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p.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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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P. S』 2023년-여름(2)호 <권두언> 에서
*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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