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中
시, 몸 그리고 싱귤래리티Singularity (부분)
이재복 | 본지 주간
몸이 의식 속에서 망각되면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뇌'일 수밖에 없다. 요즘은 모든 것이 '뇌'로 통한다. 바야흐로 뇌중심주의 시대의 도래라고 할 수 있다. 이 뇌의 극대화가 우리 시대의 지상 목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싱귤래리티(Singularity,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시점)'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이 지점에 이르면 현재의 인류와는 다른 인류, 곧 '포스트휴먼(Posthuman)'이 탄생하게 되고, 이때부터 새로운 역사(인류세 Anthropocene epoch)'가 시작되는 것이다. 캔 리우 같은 SF 작가들의 소설에서 다루어지면서 널리 대중화된 이 개념들은 허구화된 상상 정도로 간주하기에는 '지금, 여기'에서의 실질적인 관심과 그 욕망의 정도가 너무 크다. 마치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인류의 필연적인 삶의 목적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부정과 저항은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略···)
몸이 사라지고 뇌가 그것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온갖 말과 이미지가 흘러가고 있다. 이 뇌 중심의 문화와 문명은 몸을 중심으로 하는 생명과 생태 문화 · 문명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이다. 그림자의 확산은 생명의 빛의 약화 내지 소멸을 의미한다. 생명에서 배어 나오는 빛이 진정한 아우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망각하고 있다. 시의 언어는 뇌에서 만들어진 알고리즘의 결정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자연 우주로 이어지는 '전체로서의 큰 몸'에서 만들어진 생명의 언어인 것이다. 시는 제도화된 틀을 넘어서는 생명의 본능이 빚어내는 저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비어져 나오는 한 줄기 빛(아우라)과 같은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저 싱귤래리티의 도래가 우리 인류에게 빛이 아니라 그림자라는 사실을 우리 몸은 알고 있다. 캔 리우의 「카르타고의 장미」에서 에이미는 "내 생각에 몸은 저 나름의 지능이 있다. 정신은 결코 하지 못할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줄 아니까"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에이미가 말하는 '몸의 지능'이란 싱귤래리티로의 이행을 거부하는 일종의 '저항선' 같은 것이다. 이 저항선은 '매트릭스'의 견고함 속에 난 틈과 같은 것으로 그 틈으로 빛이 스며들어 그림자의 어둠을 삭이고 풀어내는 살아 있는 생명의 알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시가 그런 저항선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이 시대의 시인들은 오두 아방가르드이다. (p. 5 --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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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1-겨울(80)호 <책머리에 > 에서
* 이재복/ 문학평론가,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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