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中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말하자(부분)
- 『시와반시』를 중심으로
강현국/ 시인, 『시와반시』 주간
(前略)
어느 덧 한 세기 전의 일이다. 『시와반시』는 지방 거점 전국 독자 상대의 문예지로서 1992년 가을 창간되었다. 중앙(서울)이 아닌 이 지역, 대구에도 제대로 된 잡지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작고 소박한 꿈의 결실이었으나, 근대 문예지 10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어서 『시와반시』의 출범은 한국문단이 주목한 문화적 사건이었다. 이를 주목한 당시 한 문학평론가가 한 신문에 논평하는 글을 기고했었다. 그 앞부분을 옮긴다.
『시와반시』라는 시 전문 계간지는 '자신이 발 디딘 땅이 삶의 중심이며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이 역사의 한가운데임을 확신'한다면서 적극적인 지방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서울이라는 중심으로의 집중심과 주변이라는 대립/종속의 관계 자체를 해체, 재구성하는 데에서부터 가능할 것이다.
성민엽, '脫중심의 反詩 모색'
그렇다. 우리는 창간사에서, 다분히 도발적인 『시와반시』의 출사표를 던졌었다. 그것은 서울 중심의 문학 판에 대한 적개심의 발로이자 지역문학 현실에 대한 아픈 자성自省의 표정이었다.
지난 30년을 돌이켜 보면 『시와반시』는 아웃사이드적 변방성에 터 잡은 해체 정신이 문학적 실천을 온갖 노력을 다해왔다. 해체의 대상이 언어와 전통일 때 모더니즘시학으로, 해체의 대상이 지역과 진영일 때 변방시학으로, 해체의 대상이 문학적 근분주의의 아집일 때 실용시학으로 몸을 만들고 갈 길을 찾았다. 그것은 각각, 실험성이 짙은 젊은 시인들의 낯선 언어에 대한 주목으로, 진영논일에 대한 외연확대로 우리 나음의 지형을 모색해왔다.
『시와반시』를 필두로 그간에 전국 각지에서 지역 거점 문예지가 우후죽순처럼 출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는 양적 팽창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웬만한 규모의 지역은 그 지경 문인들이 만드는 문예지를 갖게 되었다. 영남권, 호남권, 충청권 등 권역별 기준으로 말한다면 (수도권이 아니라 하더라도) 모든 지역이 한 종 이상의 문예지를 발간하고 있다. 30년 전 그때처럼 발표 지면에 연연, 서울을 기웃거리는 일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나마 다행이겠다. (p. 18-19)
(中略)
『시와반시』 30년을 대구문학관에 기증하고 돌아오는 길, 그 길에 불던 겨울 찬바람은 여느 해보다 거셌다. 지나온 30년은 아득했고, 다가올 30년은 막막했다. 그 길 어느 모퉁이에서 나는 데미안을 다시 만났다.
"이봐 싱클레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p. 21_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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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2023 봄(28)호 <사이펀의 창>에서
* 강현국/ 197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노을이 쓰는 문장』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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