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예외인간/ 박재화

검지 정숙자 2023. 3. 16. 03:21

 

    예외인간

 

    박재화

 

 

  1981년 12월 서울역을 헤매던 소년이 경찰서로 넘겨졌다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르던 아빠를 피해 일곱살배기를 끌고 나온

  엄마는 과자를 사오겠다며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고

  보육원 천사의 집 홀트아동복지회 등으로 옮겨지던 소년은

  1983년 10월 비행기에 태워져 미국 필라델피아에 떨궈졌다

  KBS이산가족찾기가 온 나라를 울음바다로  만들던 때였다

  소년은 아팠고 충격과 당혹 속에 말문을 닫자 양부모는 참지 못했다

  이듬해 7월 겨우 재입양*된 소년은 김상필에서 필립 클레이가 되었다

  클레이 씨는 친자녀 넷 말고 필리핀 어린이를 입양한 외에 위탁아도 한 명 기르면서 

  기다려 주었으나 필립의 영혼은 시들어만 갔다

  폭행 절도 약물복용으로 입원과 수감생활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평화와 안식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양부모는 그의 미국적 취득을 꾀했으나 병원과 소년원을 오가다 때를 놓쳤고

  어느덧 성년이 된 그는

  2001년 시행된 아동시민권child citizenship act의 '예외 인간'이 되었다

  18세 이상의 입양자는 자력으로 미국적을 취득하라는 예외조항!

  필립이 '인간 예외'가 되는 순간

  원하지 않아도 주어졌던 '미국인 됨'이 원해도 따기 힘든 자격증이 됐다 

  갈수록 노숙의 시간이 길어지고 알코올과 마약은 가까이 넘쳤다

  2011년 수감중 시민권자 아님이 드러나 불법체류자가 된 필립 클레이

  7월엔 그예 37년 전 태어났던 곳으로 추방되었다

  이태원 가면 한국어 몰라도 살 수 있고 찜질방에서 자면 방값 줄일 수 있다

  인청공항까지 따라온 이민국 직원의 말만 직원의 말만  귓가에 맴돌았다

  친부모가 버리고 한국이 바렸는데 양부모와 미국도 그를 버린 것!

  필립 클레이가 다시 김상필이 되었을 뿐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됐어도 그의 인생이 통과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게 막힌 세상, 언어도 생각도 취업도 죄다 막혔다

  복지시설과 요양원은 또 다른 감옥이었고

  노숙의 나날이 깊어지자 술과 폭력이 늘고 절망도 널뛰었다

  영어가 통하는 세상으로 보내달라 절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김상필

  2017년 5월 21일 5월 21일 자정

  결국 14층에서 허공으로 날라올랐다

  읽어줄 이 없는 유서는 남기지 않았고

  빈  방엔 휘발유 담긴 패트병만 구석을 지켰다

     -전문(p. 93-95)

 

  * 여섯 살 넘는 '연장아'에 대하여는 입양을 꺼린다고 한다

  * 88올림픽 직전 국제사회는, 매년 해외입양 금메달을 목에 거는 나라는 올림픽 개최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지만 올림픽은 성대하게 치러쳤다. (한겨레신문 2017. 7. 15) 

  * 1940년대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입양아는 35만 명인데, 1958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의 미국입양아만 11만 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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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창작』 2023-봄(177)호 <중견시인 신작시> 에서 

   * 박재화/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비밀번호를 잊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