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광장/ 최영삼

검지 정숙자 2023. 3. 14. 02:35

<2023, 예술가 신인상 당선작> 中

 

    광장

 

    최영삼

 

 

  오래된 긴 의자와 풀꽃 화단

  작고 이름없는 광장은

  경계석 너머의 세상과 철저히 구분된다

  인공人工이라고는 초록색 조명탑 두 개가 전부인데

  회색의 비둘기는 밤낮없이 먹이를 찾아 총총걸음으로 주변을 헤친다

 

  광장의 밤은 이 빠진 초승달이 제격이다

  광장을 밝히기에 힘겨울 때는

  초록의 조명이 이를 보탠다, 안정이요 평화요 위안이다

 

  광장, 광장이 이토록 평화롭고 편안해도 되는가

  '광장의 작가'는 이념과 집단과 개인을 말하느라 청춘을 바쳤다

  나의 가슴앓이와 모진 성장통의 씨앗이었다

 

  광장의 魂

  광장에 발을 디딘 그날 밤

  중립국으로 향하는 포로수송선의 갑판 위로 던져졌다

  무자비하게 내리치는 인도양의 검푸른 파도를 헤치고

  미완의 초승달이 흐르는데

  남중국해 상공을 날아온 하얀 갈매기는

  방향을 알지 못한 채 앞장서 떠있다

  '그'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갈매기의 모습도 더는 보이지 않는데

  잿빛 비둘기만 북극성을 마주하고 끝없이 구구 댄다

 

  새벽, 허옇게 날이 선 초승달이 단두대가 되어 눈앞으로 추락했다

    -전문(p. 150-151)

 

   * 심사위원: 안수환  박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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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가』 2023-봄(52)호 <예술가 신인상 당선작> 에서

   * 최영삼/ 1963년 목포 출생,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