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폐허의 섬에 닻을 내리는 시간/ 주영중

검지 정숙자 2023. 2. 26. 15:02

 

    폐허의 섬에 닻을 내리는 시간

 

    주영중

 

 

  지구의 일부는 어둠으로 잠들고

  바닥은 드러누운 백지가 된다

  나에게는 자장가가 필요하지

 

  나의 집은

  하찮은 노래로 가득하고

  너를 향한 여정은

  유리 같은 거미줄처럼 위태롭네

 

  가을 초입의 온도는 슬퍼

  사이프러스 숲에는 다시 죽음의 빛들만이 오가는데

 

  수줍은 소년처럼

  폐허의 섬에 닻을 내리는 시간

 

  수많은 말과 영상이 겹쳐 지나고

  바람도 불지 않는 곳

 

  폐허와 태허 사이

  차가운 불명의 섬

  더없이 좁은 적멸보궁

 

  비명이 오장육부를 돌아 나가는

  너를 향한 무반주 여행

 

  지구는 어둠으로 잠들고

  나에게는 자장가가 필요하지

     -전문(p. 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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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포엠』 2023 - 봄(97)호 <신작시> 에서

  * 주영중/ 2007년『현대시』로 등단, 시집『결코 안녕인 세계』『생환하라, 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