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Null
김건영
뛰어넘고 싶다
없는 공간에서 널 떠올리면
(문학이)
없음
이 있다 아직 없는 책을
지금 쓰고 있다
널, 나를 삼켜도 좋다
이를 위해 살을 찌웠으니
대신 한 사람 덜 먹으렴
널, 다른
이가 없으면 이 몸으로 세상을 덮겠다
널
없는 공간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었을까
서류처럼
널
부른다
상상이 부서진 이름이여
하염없이 없는 것이
화염없이 불타 없어질 (문학은)
널
가진 후
내 이름은 도난, 탕진이죠
수준 이하 하루치의 우울
없는 대지와
없는 공간에
도착이 도착하지 않는다
머릿속이 비어 있는데
세라도 놓을까
널
음식도 마음도
식기만을 기다린다
널Null을 담기 위해
헐벗은 나무를 씻기는
비를
따뜻하다 해야 하나
차갑다 해야 하나
질문은
널, 써서 채운다
(문학을)
시그
널은 없다
(문학에서)
나를 짚어줄 손이 없는 밤에
빈 몸이 떨리고 있다
없는 책責이 잡힌다
없는 말을 손끝으로 한다
귀가 멀어지고 있다
- 『현대시』 2022-12월호
▶ 공간에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발췌)_ 박다래/ 시인
'Null'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로. 프로그래밍 언어 등 컴퓨터 분야에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경우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이 시는 빈 공간,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사유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은 시 내에서 프로그래밍의 문법으로 언어를 적어 내려간다. 수많은 지시어를 사용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가닿을 수 없는 것으로 수렴된다. 주체가 끊임없이 'Null'을 호명하지만 호명하면 호명할수록 'Null'은 지워져 간다. 이를 동음이의어 '널(너를)'로 읽어도 흥미롭다. 주체는 결코 '너'에게 가닿을 수 없다. 그리고 곧 그 가닿을 수 없는 너는 곧 '문학'으로 치환된다. 이 주체에게 문학이란 결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시인은 빈 공간에서, 프로그램의 언어로 수많은 지시어를 쓰고 이를 번복한다. 이렇듯 문학은 계속해서 실패하고, 번복되고, 다시 시작된다. 그 어떤 지시어도 '없는 공간', '가닿을 수 없는 곳'에서는 무력해지고 마는 것이다. (p. 시 228-230/ 론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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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2023-1월(397)호 <현대시작품상 이달의 추천작/ ···추천작을 읽고> 에서
* 박다래/ 2022년 『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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