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 발췌 셋
김지율
인간과 공간 그리고 문학(부분)
문학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탄생되는 하나의 시발점으로 공간과 장소는 작품 속 주체의 의도나 상상과 같은 경험의 총체성이 드러나는 곳이다. 이러한 공간은 현실적인 공간에서 출발하지만 실제적인 장소와 구분되며 허구적 공간과도 다르다. 즉 체험의 실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주체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인식의 공간으로 작가의 상상이나 시적 사유 그리고 독자의 경험적 공간이 서로 만나는 자리이다. 그런 지점에서 시작詩作을 비롯한 문학 창작은 사회적 경험을 통해 원초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주어진 공간을 '특별한 장소'로 맥락화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p. 23)
젠더 공간으로서의 여성의 몸(부분)
푸코는 몸을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유토피아와 헤테로토피아가 발현되는 장소로 표현했다. 이러한 몸은 종교적이고 신성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른 세계로서의 반反장소가 되기도 한다. 춤추는 사람의 몸은 그 몸이 자신의 내부인 동시에 외부로 확장된다. 무당이나 주술사의 몸은 타인의 영혼을 자신의 몸속으로 불러오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영혼이 거주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주홍글씨와 같이 낙인 찍힌 몸은 환멸과 속죄의 장소가 된다. 이처럼 몸은 주위의 많은 관계들 속에 배치됨으로써 세상의 모든 장소들과 연결된다. 여러 공간이나 장소가 서로 교차하는 세계의 중심이자 영도(point zero, 零度)로써 우리는 그 몸을 통해 말하고 무언가를 꿈꾼다. 결국 세상의 모든 공간들은 실재적이든 가상적이든 '다른 장소'로서 이 몸을 통해 시작되고 나아가게 된다. (p. 39)
1) 디지털 헤테로토피아와 '메타버스'(전문)
지금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유토피아적 장소 중의 하나는 바로 가상공간이다. 이 가상공간은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점점 사라져가는 '증강현실'로 발전되고 있는데, 가상 세계 속의 또 '다른 현실'은 실제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도 하고 겹치거나 동시에 비껴가기도 한다. '메타버스'는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 공간을 가상 세계에 구현한 플랫폼으로 지역과 인종, 나이와 젠더의 구분 없이 또 다른 일상을 경험하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실 세계를 가상의 공간에 구현한 디지털 헤테로토피아로서의 '메타버스'는 1992년 닐 스티븐슨의 SF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 소설에서 '메타버스'는 아바타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3차원의 가상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 후 2009년 린든 랩이 출시한 3차원 기반의 '세컨드 라이프'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메타버스가 알려지게 되었다.
'메타버스'는 '초월', '상위' 등을 의미하는 접두사 '메타(ma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 · 경제 ·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 세계'이다. 가상현실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개념으로 아바타를 활용해서 게임뿐 아니라 실제 현실과 같은 사회 · 문화적 활동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메타버스는 현실보다 더 완전한 세계에 대한 인간의 열망 즉 유토피아를 현실에 실현시킨 디지털헤테로토피아이다.
이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 된 것은 과학소설의 한 장르였던 사이버펑크였다. 사이버펑크는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새로운 과학 기술, 특히 고도로 발달한 정보기술로서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인류가 경험하게 될 갈등과 부조리를 주된 소재로 삼은 과학 소설이다. 그 명칭은 미국의 작가 브루스 베스키의 단편 소설 「사이버펑크」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초기 사이버펑크 작가였던 윌리엄 깁슨은 1982년 SF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에서 인터넷의 버츄얼한 세계 속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 공간을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라고 하였다. 이후 이 소설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와 워쇼스키 형제 감독의 <매트릭스 시리즈>(1999~2021) 등의 영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로 인해 사이버펑크가 새로운 문화 코드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 사이버 공간은 또 다른 시공간의 탄생이며 정치적 저항이나 해방 정치에 적합한 공간으로 다양한 현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질서들을 실체화하는 시공간의 유토피아(데이비드 하비, 최병두 외 역, 『희망의 공간』, 한울, 2009, 8쪽)이다. 즉 현실에 있으면서 현실에 없는 장소 밖의 장소로서 현실과 다른 시공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메타버스는 기존의 사이버 공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사회 · 정치적 활동까지 이뤄지는 온라인 공간이다.
이미 '메타버스'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면서 게임, 엔터테인먼트, 음악, 콘텐츠 산업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마존아스트로(ASTRO)처럼 실제 공간 안에 있는 다양한 장비를 통해 물리적 공간을 움직이는 것처럼 '메타버스' 안에 있는 누군가가 물리적인 공간을 제어할 수도 있으며 공간끼리 서로 연결하는 '메타버스'도 계발되고 있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증강 현실과 가상현실의 기술을 기반으로 일상에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장소들을 한 장소에 배치해 놓는다. 이러한 공간들은 '유동적'이고 '임시적'이어서 하나의 고정된 모습을 갖지않고 변화된다. 물론 공간에 있는 사람이 매번 바뀔 수 있으며 고정된 경계 또한 존재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공간 자체가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디지털헤테로토피아로서의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허물며 아바타를 통해 현실에서 상상했던 모든 일들을 해나가며 또 다른 현실을 실현시키고 있다. (p. 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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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율 연구서『문학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기억되는가』에서/ 2022. 11. 24. <국학자료원 새미> 펴냄
* 김지율/ 2009년『시사사』로 등단, 시집『내 이름은 구운몽』『우리는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대담집『침묵』, 詩네마 산문집『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들』, 연구서『한국 현대시의 근대성과 미적 부정성』『문학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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