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가요 중의 가요
고영섭
향가는 예로부터 '사뇌가詞腦歌'로 불렸다. '사뇌'는 '가사가 정밀하다精於詞'는 뜻意이다. 이 때문에 '사뇌가'는 '노래 중의 노래'이자, 가사 중의 가사'로 불렸다. 동시에 '시가 중의 시가'이자, '송가 중의 송가'로 불렸다. 나아가 향가는 '가요 중의 가요'로 일컬어졌다. 향가는 최고의 노래이자 가사이며, 최상의 시가이자 송가이다. 향가는 고대 동아시아의 시가 중 최정상의 가요였다.
균여(932~982, 50)대사는 의상(625~702, 77)대사의 7대 화신으로 불법을 널리 펴고자 다시 인간 세상에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뇌가'의 형식으로 보현보살의 열 가지 큰 소원을 담은 「원왕가願王歌」를 지었다. 그의 향가 노래와 시가 이루어지자 중국 사람들은 다투어 책을 써서 나라에 전하였다. 송나라 조정의 군신들은 "이 사뇌가를 지은 이는 진실로 한 부처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고 하였다.
『균여전』을 지은 혁련정赫連挺은 균여대사가 "불교 이외의 학문인 '사뇌詞腦'(뜻이 詞에 정밀하므로 腦라 한다)에 매우 익숙하여 보현보살의 열 가지 큰 소원願王에 의거해 노래 열한 수를 지었다."고 하였다. 그는 서문에서 "대개 '사뇌'란 세상 사람의 기꺼움과 즐거움의 도구具요, '원왕願王'이란 보리살타의 다스림과 나아감의 벼리樞다. 그러므로 얕은 데를 건너 깊은 데로 들아가고, 가까운 데에서 먼 데로 이르려면, 세속의 도리世道에 따르지 않고서는 둔한 근기劣根을 인도할 길이 없으며, 비루한 언설陋言에 따르지 않고서는 넓은 인연普因을 나타낼 길이 없다."고 하였다.
균여는 '사뇌'와 '원왕'으로 향가의 정의와 의미를, '세도'와 '누언'으로 향가의 방편과 방법을 풀어서 밝혔다. 그는 '이제 알기 쉬운 가까운 일에 의탁해서今托易知之近事' '다시 생각하기 어려운 깊은 뜻을 이해하여還會難思之遠綜' 열 가지 큰 소원의 글에 의해서依二五大願之文 열한 수의 거친 노래를 지었다課十一荒歌之句. 그가 '글을 맞추고 글귀를 지어傳文作句' '뭇 삶凡俗이 좋은 근본善根을 낳기를 바라며' 언급한 '사뇌'와 '원왕' 및 '세도'와 '누언'은 그의 진심이 담긴 진실과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균여의 향가를 한시로 옮긴 최행귀崔行歸는 "이 「원왕가」는 읊어서 그 시객을 대신해 남과 여를 모두 듣게 해 원을 일으키게 하여 길이 뛰어난 인연을 맺게 하고, 나와 남을 모두 구제해 공을 성취하게 하니, 끝내는 아름답고 빼어난殊妙 결과에 돌아가지 않으랴? 대저 이렇게 되면 8, 9행의 '당서唐序'는 의미가 넓고 문장이 넉넉하지만, 열한 수의 향가는 문장이 맑고 글귀가 아름답다. 그 작품 됨은 '사의 뇌수詞腦'라고 일컬어서 정관의 사詞을 업신여길 만하고, '부의 머리賦頭'처럼 정교하여 혜명惠明의 부賦에 비교할 만하다."고 하였다. 여기서 최행귀는 '사뇌'를 '문장이 해맑고 글귀가 아름다움'으로 풀어내고 있다.
우리 <현대향가> 동인들은 '사뇌가'의 이러한 의미를 되새기며 제5집 『가요 중의 가요』를 펴낸다. 우리 고대 가요의 현대화이자 현대 가요의 구전화를 기대해 본다. (p. 6-7)
2022. 11. 고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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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가시회_현대향가 제5집『가요 중의 가요』에서/ 2022. 12. 10. <문예바다> 펴냄
* 고영섭/ 향가시회 동인,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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