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행복이데올로기와 고통 피하는 사회(일부)/ 문혜원

검지 정숙자 2022. 12. 22. 01:15

<권두시론>

 

    행복이데올로기와 고통 피하는 사회

 

    문혜원/ 문학평론가

 

 

  에바 일루즈는 이처럼 행복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된 사회를 '행복'이란 뜻의 '해피(happy)'와 '정치체제'를 뜻하는 '크라시(-cracy)의 합성어, '해피크라시((happycracy)' 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그는 '행복'이 정치뿐만 아니라 교육 및 노동 현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21세기에 가장 각광받는 '행복 산업'으로서 상품 시장에 편입되었다고 비판한다.

  해피크라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삶의 문제들을 개인의 차원으로 돌려놓는다는 것이다. 행복을 말하는 담론들은, 행복을 성취하는 방법으로서 개인의 태도와 발상의 전환, 자아 개선과 자아 실현을 꼽는다. 우선은 '나 자신'으로 돌아가서,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인이 개인의 내면에 있다면 해결책 또한 개인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개선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이 사회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 게으르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기 개선을 통해 얼마든지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자기 개선에 실패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이며 부끄러운 일로 간주된다.(에바 일루즈 · 에드가르 카바나스, 이세진 옮김 『해피크라시』 청미, 2021 참고)

  이것은 신자유주의적인 성과사회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주체는 외부적인 지시와 권력에 의해 노동을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착취를 선택한다. 개인은 자신의 노력으로 성과를 내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노동의 강도와 보수는 개인의 선택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하게 열려 있다. 따라서 개인의 가난은 능력 부족이거나 게으름과 같은 개인적인 책임으로 돌려진다. 행복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가진 자에게만 보장되어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은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행복해질 수 있고, 불행하다면 그것은 개인의 능력이 모자란 탓으로 치부된다.

  긍정 마인드 교육이나 마음 챙김 등 긍정심리학 관련 담론들은 자기 개선을 통한 행복 찾기를 권유한다. 그것은 대체로 '긍정의 힘'을 강조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감정, 긍정적인 반응은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낸다('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긍정적 감정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주고 환경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도움으로써 개인을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끈다. 반면 부정적 감정은 행복에 이바지하지 않거나 그것을 저해하는 감정으로서 자아정체성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된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될 때,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 또한 긍정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고통은 나쁜 것이고, 그것조차도 쓸모에 의해 평가된다. 긍정적인 교훈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고통은 아무 쓸모가 없다(한병철은 '회복탄력성'이 트라우머의 경험조차 성과 향상을 위한 촉매로 만드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한병철(이재영 옮김 『고통 없는 사회』 김영사, 2021. 11면) (p.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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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시대』 2022-가을(26)호 <권두시론> 에서  

  * 문혜원/ 1989년『문학사상』으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한국근현대시론』『존재와 현상『1980년대 한국시인론』, 평론집『비평, 문화의 스펙트럼』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