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서평/ 세상으로 난 편지길 - 김남석

검지 정숙자 2010. 10. 28. 00:59


    세상으로 난 편지길

    -정숙자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천년의 시작)

  

     김남석

 


  1. 편지에 대한 명상


  정숙자의 일곱 번째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숙자가 생각하는 시에 대해 먼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편지는 내 징검다리 첫 돌이었다

  어릴 적엔 동네 할머니들 대필로 편지를 썼고

  고향 떠난 뒤로는 아버님께 용돈 부쳐드리며 “제 걱정은 마세요” 편지를 썼다

  (중략)

  셀 수 없이 많은 편지를 쓰며 나는 오늘까지 건너왔노라

  희망이 꺾일 때마다 하느님께 편지를 썼고

  춥고 외로울 때는 언젠가 묻어준 고양이 무덤 앞에서 우울을 누르며 편지를 썼다

  어찌어찌 발표된 몇 줄 시조차도 한 눈금만 들여다보면 모습을 바꾼 편지에 다름 아니다

  편지는 내 초라한 삶을 세상으로 이어준 외나무다리, 혹은

  맑고 따뜻한 돌다리였다

  편지가 있어 내 하루하루는 식지 않았다

  한 가닥 화려함 잃지 않았다

  편지봉투 만들고, 편지지 접고, 우표를 붙일 때마다

  시간과 나는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또 믿었다

  그리고 그 조그만 빛이 다음 번 징검돌이 되고는 했다

                                                   -「내 오십의 부록」


  시인은 담담하게 자신이 생각했던 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옛날부터 써 왔고, 지금도 쓰고 있으며, 어떨 때는 다른 이들의 요구에 의해 쓰기도 했지만, 지금은 자신을 위해 쓰고 있다는, 솔직한 고백도 하고 있다. 그 고백 속에는 시가 어쩌면 자신이 오래 전부터 써왔던 편지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감회도 포함되어 있다.

  편지는 다른 세상,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다. 시인의 말대로 하면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이다. 시인은 그 다리가 튼튼한 돌다리이거나, 넓은 신작로가 아니라, 외나무다리라고 했다. 이 말을 확대하면 시인은 시인의 이쪽 세상에서, 타인들의 저쪽 세상으로 가는 길을 아주 좁게만 만들어 놓고 있는 셈이다.

  편지에 얽힌 다른 사연도 있다. 읽어 보자.

                                                                    

  편지는 늘 시보다 따뜻하다

  허공으로 띄워 보내는 꿈이 아니라

  포근히 가 닿을 주소와 그 주소의

  주인이 있다

  편지는 한 사람이면 모든 독자다

  길이 살아남아야 할 부채도 짐지지 않는다

  그가 한 번 읽어주는 것으로

  생명을 마쳐도 좋다

  편지는 내가 아는 한 어떤 행위보다도

  고매한 발명이다

  어느새 고전이 되어버린 손편지―

  그러나 나는 오늘도 편지를 쓴다

  땅 위에선 시를 짓고

  하늘에선 책을 읽고, 삼십삼천(三十三天) 바깥에서도

  도솔천에서는 편지를 쓴다

  이슬 한 방울이 증발하는 시간보다도 빠르게

  읽히고 잊혀질지라도, 벗이여

  나는 내 소유의 모든 잉크 중에서

  가장 슬픈 채도를 아껴

  그대의 이름을 적는 데 쓴다

  그 속으로 몇 줄의 시가 지나갈지라도

  벗이여, 나는 그대의 이름이 한없고 곱다

                                           -「네 번째 하늘에서」


  시인의 말을 그대로 믿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시인은 편지가 시보다 따뜻하다고 말하고 있다. 수많은 독자를 가질 수 있지만, 정작 한 명의 독자를 가진 편지보다 덜 행복한 것이 시라고 말하고 있다. 시가 읽히지 않는 세상의 풍경을 대입하면 이 말은 문학이 버려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말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정숙자 시인의 다른 시들을 고려하면, 이 말은 오히려 순도가 떨어지는 시보다는 편지가 더욱 깊은 공감을 준다는 말로 들린다. 이 말을 거꾸로 풀면 지금보다 더욱 순도가 높고 감정의 진폭이 강렬한 시를 써야 한다는 말로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시인의 생각은 이 시집 전체에 널리 퍼져 있다. 시인은 시가 감정의 절제가 되고, 언어의 절약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 정숙자 시인의 시는 대체로 길고, 시인의 감정이 짙게 묻어나오도록 축조되어 있다. 마치 격정에 싸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우리 시사에서 감정의 절제나, 언어의 절약은 시 창작의 기본 명제로 받들어져 왔다. 시를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도, 시는 속 감정을 에둘러서 드러내고 일반적인 언어를 축약해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배워 왔고, 또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감정의 폭과 깊이를 진하게 노출하는 정숙자의 시는 달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숙자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시인은 익명의 다수를 향한 냉정한 절약과 절제보다는,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솔직한 그래서 감정의 결이 진하게 묻어나는 시를 선호한다고 할까. 세상 어떤 행위보다도(이 안에는 아마 일반적인 의미의 시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고매한 발명인 편지가 그녀에게 소중한 까닭은 편지 속의 사연이 단 한 명의 독자일망정 그에게 시인의 ‘가장 슬픈(감정의) 채도’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세상과의 거리


  시가 곧 편지라고 믿는 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세상과의 거리(距離)이다. 세상에 밀착해 있다면 편지가 건너야 할 공간을 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인은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약간 떨어진 공간에 위치하며, 그 시선과 폭으로 세상을 향해 편지를 쓴다.

  정숙자의 시 「무인도」를 보면, 누군가에게 무인도로 서 있어주겠다는 시인의 다짐이 나온다. “서푼짜리 한 친구로서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 거리에 서 있어줄게 / 동글동글 수너리진 잎새 사이로 / 가끔은 삐친 꽃도 보여줄게 / 그 투박한 층층그늘에 / 까치 소리도 양떼구름도 가시 돋친 풋별들도 / 바구니껏 멍석껏 널어놓을게”라고 말을 건네고 있다. 시적 주체는 자신이 바닷가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무인도가 되고 싶어 한다. 찾아올 수 있을 만큼 가깝고 믿음직한 친구가 되겠지만, 평소에는 그 거리만큼 떨어져 있고 싶다는 속내가 담겨 있는 말이다.

  이러한 표현들과 시어들을 모아보면 시인은 세상과 떨어진 공간에서 조용히 칩거하기를 즐겨하는 것 같다. 옛 시인들은 고고한 품성으로 정숙자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겅우가 많았다. 시정의 삶 속으로 살 섞어 들어가기보다는 그들의 삶과 거리를 취하면서 그들의 삶을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곤 했다. 이러한 태도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문인(시인)의 귀감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 현실과 유리된 그들의 삶과 시작 태도에 대한 반감을 사기도 했다.

  정신의 고고한 그림자를 거느린 이들이야 풍류와 멋과 여유를 이해할 수 있지만, 발에 진흙을 묻히고 진창길을 걸어야 하는 일반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이러한 태도가 얼마만큼 공감대를 일으킬 수 있느냐는 반문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숙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일단 정숙자의 시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싱의 자세를 높이지는 않고 있다. 가령 「김나현」과 같은 시를 보면 정숙자가 세상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외경심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면 관계 상, 이 시를 말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시인은 2003년 7월에 태어나 ‘김나현’을 2005년 6월에 돌보러 가게 되었다. 그러니까 김나현은 우리 나이로 4살 정도 된 아이였던 셈이다. 시인과 김나현은, ‘나현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에 즐거운 한때를 보내게 된다.

  아이는 그 자체로 어른을 놀라게 하는 존재인데, 시인 역시 아이의 천진난만한 수박 사랑에 놀라고 만다. 시인은 아이가 수박에게 말을 거는 광경을 보고, 수박을 하나의 사물이 아닌 생명체로 취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세상 속의 아이가 세상을 떠나 있으려는 시인에게 다소 놀라운 가르침을 베푼 셈이다.

  또한 정숙자는 세상으로 난 길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은자(隱者)들은 세상과 절연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었다. 큰 눈이 와서 사립문까지 이어졌던 세상과의 길이 문득 끊어진 것을 보고 정신적 해방과 고절함을 노래한 선조 시인의 모습은, 당당하게 세상의 일각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삶을 꾸려가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숙자는 편지라는 외나무다리일망정, 세상으로 가는 길을 잃지 않으려 한다. 시 「길에 대한 리서치」를 보면, 그녀는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언젠가는 밟으려는 뜻일까?                                            

                   

  정다운 오솔길, 얼었다 풀린 진흙길, 예기치 않은 빙판길, 돌아나온 골목길, 땡볕 깔린 자갈길, 툭 터진 바람길, 별 쏟은 난바닷길, 앞뒤 모를 굽이길, 구름 고운 뒤안길, 하늘만 믿는 비탈길… 자! 당신은 타인에게 어떤 길인가?

                                                          -「길에 대한 리서치」

                                              

  맨 마지막 문장은 없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 문장으로 인해 시인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우리는 많은 길을 만나게 된다. 사실 그 길은 하나의 통로이지만,  그 통로를 둘러싼 세상과 배경 그리고 주변 환경의 변화에 의해 아름다운 오솔길도 되었다가 험난한 진흙길이 되기도 한다. 그 길은 때로는 돌아 나와야 하고, 때로는 무작정 가야 하는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정숙자는 이러한 길들을 보면서, 묻고 있다. 타인에게 자신들은 어떤 길인가, 라고. 정숙자에게도 물을 수 있다. 시인은 타인에게 어떤 길이고 싶으냐고? 시인은 시가 타인에게 건네질 자신의 길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녀가 세상에 보내고 싶다는 편지는 바로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길을 건네주고 깔아주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적어도 편지에 대한 명상을 보면, 그녀의 태도는 그러하다.


  3. 시정(市井)의 삶 속으로

 

  한편, 정숙자 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그것은 정숙자 시가 놓인 지점에 대한 반대 방향에서의 불만이다. 정숙자 시는 고요하고 침착하다. 중견 시인이 가지고 있는 시적 안정도가 높으며, 시어의 조탁이나 묘사의 형태도 불필요한 객기를 배제하고 있다.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가 보다 생기 있게 만들어진 필요가 있다는 욕구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시가 지닌 관조의 시선 때문일 것이다. 정숙자는 세상 바깥의 위치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삶의 신산을 품고 있지 않다.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묘사와 찬사는 빛을 발하지만, 시가 마냥 아름다울 수만 있느냐는 생각에 맞서면 다소 의기소침해 질 수 있다.


  우리 집 살림살이 여행보다 책이 알맞다

  초원이나 내뻗은 강 눈앞에 없을지라도 책 속에는 한 그루 보리수가 자란다

  가지를 따라 하늘이 넓어지고 새들이 날고 잎새들 달랑달랑 바람을 닦는다

  오래된 책들은 어느 갈피에서도 등을 보이지 않는다

  귀 시린 누옥에 군불 지필 몇 마디 말씀 잊지 않는다

  세월 거느린 보리수는 어떤 고비에서든 상큼상큼 아침을 연다 

  총총히 매어 단 이슬방울들 산이나 바다보다도 맑고 따뜻하고 또 의젓하다            

  마음 둘러보는 여행 말고는 한눈팔 수 없는 우리 집 살림         

  바깥이야 봄 햇살 난난난 분분분인데 나는 맨발인 채로 추녀 밑 그늘을 산다

  날개가 한쪽뿐인 낮달과 보리수와 대작(對酌)을 한다

                                                                   -「지구여행권」


  이 시의 제목으로 보았을 때, 시인은 지금 지구의 풍경을 책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정확하게 시적 정황이 파악되지는 않지만, 시인은 실제로 걸어다니는 여행보다 책 속에서의 여행을 선호하는 것 같고, 이 시에서 그러한 책 속의 지구 여행이 주는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책’이란 반드시 종이로 이루어진 물건으로서의 책은 아니다. 그녀가 생각하는 책은, 이차적 세상이며 정신의 영역에 해당한다. 일차적 물질로 만들어진 세상에 대해 말과 지혜와 깨달음으로 달아놓은 일종의 주석이다. 따라서 굳이 종이 책을 보면서 세상 여행을 한다는 식으로 이 시를 해석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이 시에서 다루고 있는 보리수나 누옥 등은 어떨지 몰라도, 이슬방울, 산, 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봄 햇살 같은 풍경 등은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마당을 열고 나갔을 때, 볼 수 있는 것들인 셈이다. 시인은 형편을 핑계 삼아 실제로 떠나는 여행을 거부하고, 편안한 차림으로 자신의 집에서 세상을 돌아보기를 희망한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은 추녀 밑으로 한정한 것이다.

  앞에서도 거듭 말했지만, 시인은 세상에 직접 발 딛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거리로 인해, 그녀의 시는 품격을 생성하지만, 또한 그 거리로 인해 그녀의 시는 한쪽으로 갇히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인용된 시에서 시인이 그려내는 풍경은 아름답고 조화롭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비루함이 배제되어 있고, 조화로움에는 난장(亂場)과 무질서가 대비되어 있지 않다. 내가 아쉬워하는 것은 시정의 비루한 삶이, 일상사의 무질서와 난장이 그러한 아름다움 속에 대비되거나 삽입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듯이, 아름다운 풍경과 거리만으로는 우리 삶의 다른 측면, 어두운 뒷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4. 비릿한 삶의 냄새


  정숙자의 시 「간장병과 식초병」은 읽으면 읽을수록 괜찮은 시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두 번째는 눈길을 머물게 되었고, 세 번째는 기억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 이유는 고아한 품성 옆에 나란히 놓인 삶의 냄새 때문이다.

                                                                   

  나에게는 요즘 새로운 손짭손 하나가 생겼다

  신문이나 전단 등에서 하루살이로는 아까운 그림을 솎아 엽서로 만드는 일이다

  반듯하게 마름질한 아트지에 풍경들을 앉혀놓으면 웬만한 시보다 따뜻하다

  맑아지는 하늘이 세상 밖이다

  그 살붙이들 곁에 두는 시간이 길어지지만 어쩌다 남풍이 불면 선뜻 띄워 보내기도 한다

  엊그제 태어난 엽서 가운데 간장병과 식초병 사진이 있다

  자그마한 유리병 두 개가 어찌나 다정하게 서 있는지 대할 때마다 저절로 행복해진다

  나는 그들이 언제까지나 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식탁으로 나뉘는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

  세월과 함께 색이 바래고 흠집이 생기더라도 오늘 이대로 한자리에 서 있기를 바란다

  그들이 소화기관과 두뇌를 갖지 않은 몸일지라도 어울리는 짝을 이루었을 때는 타의에 의해 헤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길지 않다

  나는 구름 속 꿈에서나마 연리지(連理枝)의 이상을 구현한다

                                          -「간장병과 식초병-無爲集 1」


  시인은 간장병과 식초병이 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에 불과할 것이다. 두 병은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용도로 식탁과 부엌 여기저기를 옮겨 다닐 것이다. 그럼에도 두 개의 병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만나지 못한다 해도, 정숙자 시인의 용법을 빌려 말하면, 두 병이 만났던 길과 그 때 나누었던 사연을 기억할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조화롭고 아름답게 놓여 있었던 한때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햇빛에 반짝이며 흘러가는 물결의 비늘을 ‘물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던 것처럼, 두 병의 한때에 이름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이름은 이미 붙었다. 이 시의 제명 「간장병과 식초병」이 그것이다.

  정숙자 시인으로부터 이 시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름답게 재활용된 엽서를 받은 적이 있다. 손수 쓴 손편지처럼, 감동적이고 따뜻한 엽서였고, 내 기억 속에는 편지를 넘어 시로 남아 있다. 정숙자 시인이 그토록 갈망하는 소통, 즉 타인에게 이르는 길은 그러한 기억들의 집합일 것이다. 위의 시가 정숙자 시인의 소통에 대한 열망을 잊지 않으면서도 시인의 위치를 그녀가 견지하기를 바라마지 않던 세상 저쪽에 그대로 놓아두면서도 동시에 삶의 비릿한 냄새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기에, 보다 의미 있을 수 있었음을 또한 기억하겠다.

 

 

    * 김남석/ 서울 출생, 1999년 << 중앙일보 >> 신춘문예로 등단. 평론집 『비평의 교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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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전문무크『시와인식』 2007 허리와어깨 13집 / <좋은 시집 골라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