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시집 · 공검 & 굴원

이송우_이 시집을 주목한다/ 정숙자 『공검 & 굴원』

검지 정숙자 2022. 12. 24. 03:39

   

    운명의 시간을 여행하는 철학자, 천 개의 눈을 가진 메두사의 슬픔 

     - 정숙자 시집 공검 & 굴원(2022. 미네르바)

 

    이송우/ 시인

 

 

  말없이 서 있는 나무의 우듬지를 쳐다봤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모두가 낮은 곳을 향하는데, 그이는 ‘그 우듬지가/ 신조차 사뭇 쓸쓸한/ 허공에 걸’렸다가, ‘한층 더 짙-푸른/ 화석이 된다’(「극지 行」). 우직하게 한 길을 걷는 존재는 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을 따라 한층씩 오르는 나무의 고독함을 느끼는 것은 시인이다. 정숙자 시인의 『공검 & 굴원』은 쓸쓸하지만 하늘 향해 나아가는 천형을 받아들인 철학자의 심정을 담았다.

 

  시인은 공검空劍이라는 신조어를 통해서 ‘구름이 움찔하’도록 ‘허를 찌르는 칼’(「공검(空劍)」)인 나무의 심상을 펴보인다. 달빛을 자르는, 허공을 찌르는 칼은 얼마나 느리고 무뎌야 하는가. 그것은 ‘태양의 방문을 기다’리고, ‘숨소리가 물결을 일으키’며 ‘알을 깬 깃털구름’(「진무한」)을 기다리는 만큼 느리다. ‘지나온 봄여름을, 여름가을을다 게’우고, ‘중심까지 굳히는 데는 한계절을 걸어야’ 할 만큼(「얼음 π」). 다만 그에게는 자신의 목적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천 년이 이만 년을 포갠다 한들/ 그뜻, 그 그늘이면 한목숨 아낄 리 없’(「굴원」)을 만큼. 다만 ‘이제 놓아라, 다시는 밀어 올리지 마라, 시시포스여!’(「데카르트의 남겨둔 생각」)라는 절규 속에서 운명을 거부하고 싶은, 그러나 받아들여야 하는 예수의 고독이 엿보인다.

 

  인간이 시간과 공간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인간과 짐승dl 구분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에 담은 공간과 공간에 머문 시간을 통해,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고 과거를 기억할 수 있다. 시간 속에 변화하고 공간을 유랑하는 아와 비아非我를 인식함으로써, 인간은 운명과 죽음을 이해한다. ‘썩어나가는 불꽃으로 피워야 할 꽃을 그는 내게 심으셨구나’(「크로노스」)라는 운명의 깨달음, ‘아무리 베어져도 숙달되지 않는 이 칼날 앞에서’(「날 선 날」), ‘햇빛을, 봄을 기다리지, 죽을 때 죽더라도/ 단 한 번 가슴속 얼음을 녹이고 싶’(「북극형 인간」)다는 기다림의 소망. 그렇다, 시인의 운명이란 시간을 손에 움켜쥔 채 흔들림 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눈이 있어야 바라볼 수 있다. 시각 중심의 인간에게 눈은 외부와 통하는 길이다. 그런데 정숙자 시인은 이 길을 깊고 넓게 닦고 있다. ‘모순을 부질없음을 초저녁별이 어둠을 본 만큼 봤어’(「먼 곳에서 도는 새벽」)라고 고백하면서도, 나아가 눈이 없어도세상을 관찰할 수 있거나, 내 눈이 아닌 타자의 눈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러나 사실 그 눈은 자꾸 질문하면서 내 눈과 말을 자신의 눈 속에 저장하고 있었’(「자력선 – 미망인」)다며, ‘육체가 죽었을 때 가장 아까운 건 눈동자’(「북극형 인간」)이고, ‘그 시력은 퇴화되지 않는다’(「정오의 눈」)는 시인은 이내 ‘내 눈엔 안 보이지만 그는 정확하게 가고 있어’(「범선」)라는 통찰과 ‘접시에 누운 생선이 나를 바라보’(「죽은 생선의 눈」)는 주객의 전도를 행한다. 시인의 눈은 즉자적 시각에서 대자적 통합 감각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와 세상을 망원경처럼 멀리 느끼고 현미경처럼 촘촘하게 사유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되었을 것인데, 이 의지는 ‘모호의 전모를 둘러보’(「즐겨참기」)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메두사는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진 부처만큼이나 많은 머리를 가졌지만, 허억~

 

  천수천안, 그 부처가 부러울 따름이다

 

  머리는 하나만으로도 수천수만의 현안을 끌 수 있으나 정작 행동력은 손이 아닌가

 

  무슨 소용이랴. 손이 한 벌이라 황금의 시간들도 한줄기로 흐르고 마는구나

 

  메두사에게 천 개의 손이 있다면

  하루가 비록 짧을지라도

  가로세로 엮을 것을,

 

  메두사는 오늘도 많은 눈 열렸건만 하는 거라곤 그 눈들을 껌벅거리는일···

 

  해가 벌써 기우는데 메두사의 머리들은 공중에 매달려 검은 포도송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 「멜랑꼴릭 메두사」 전문

 

 

  천 개의 눈을 가진 메두사의 슬픔은 무엇일까. 그녀는 천 개의 손을 소망한다. ‘이제 나는 그가 된다’(「랑그의 강 – 미망인」)고 죽음마저 포용하는 시인은, ‘그렇게 심어야겠네/ 홀로이/ 헤테로토피아에’(「피어, 書」)라고 지금 여기의 삶을 홀로 껴안는다. ‘죽은 자는 울지 못한다’(「액땜」)고, ‘내일이야 어찌 알겠습니까’(「측면의 정면」)라고 말하는 시인. “깊고 넓은 통찰력을 가진 시인이여, 당신이 가진 단 하나의 손이 가장 위대한 손입니다.” 천 개의 손보다 훨씬 고귀하고 아름다운 시인의 손을 경배한다. 우리는 ‘신’이 아니므로, ‘철학’하는 인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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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21』 2022-가을(58)호 <이 시집을 주목한다>에서

* 이송우/ 2018년『시작』으로 등단, 시집『나는 노란 꽃을 모릅니다』, 공편시집『나의 투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