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오세영 산문집『곡선은 직선보다 아름답다』「아이오와대학 캠퍼스의 오리 떼들」

검지 정숙자 2022. 10. 28. 16:49

<산문>

 

    아이오와대학 캠퍼스의 오리 떼들

 

    오세영

 

 

  2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1987년 가을, 나는 미국의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주관하던 '국제 문학창작 프로그램(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해외공보처의 경제적 지원을 받은 아이오와대학교가 세계 20여 개 국가들의 시인, 작가들 30여 명을 초청해서 6개월 동안 각개 민족 문학들 간의 상호 교류와 세계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설립한 국제적인 문학창작 워크숍이다.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모임이었다. 나로서는 이 프로그램에의 참여가 첫 미국 체험이어서 그랬던지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상생활에서 보여주었던 미국인들의 환경 보호 의식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지금은 우리 국민들도 이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당시(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우리는 아직 경제개발이라는, 보다 화급한 국가 발전의 우선순위에 밀려 생태환경과 같은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p. 140~)

  아이오와대학은 학생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후생 복지 체계가 잘 갖추어진 학교였다. 기숙사, 도서관, 극장, 체육관 등은 물론 그 넓은 캠퍼스와 시내를 연결하는 교통망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끊임없이 개최되는, 높은 수준의 여러 문화 및 예술 행사도 뉴욕이나 워싱턴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내가 부러웠던 것은 캠퍼스 자체가 참으로 아름다웠고 친환경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야트막한 구릉을 끼고 도는 아이오와강과 그 강가의 무성하게 자란 숲, 적당히 조성된 잔디밭은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정연하게 배치된 크고 작은 교사校舍들과 잘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곤 했다. 그래서 비록 한국에서는 비교적 시설이 좋다는 대학의 교수였던 나였지만 서울의 내 제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 들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오와강은 맑고 깨끗했다. 송어 낚시를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낚시 그 자체를 즐기는 일종의 스포츠였으므로 그들은 잡은 물고기들을 그 즉시 바로 그 자리에서 놓아주곤 했다. 어떤 날은 학생들의 조정 경기로 떠들썩했고, 어떤 때는 수면에 작은 요트 몇 척이 한가롭게 떠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대학 캠퍼스에 헤아리기 힘들 만큼의 야생 오리 떼들이 날아들어 아무 거리낌 없이 학생들과 어울려 지낸다는 사실이었다. 오리들의 자연 생태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굳이 그 종류까지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종류의 수천 마리 오리 떼가 일시에 아이오와 강변에 날아들어 때로는 유유히 헤엄을 치기도, 때로는 학생들을 따라 뒤뚱뒤뚱 걷기도 하는 모습은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p. 141~)

  학생들은 절대로 그 같은 오리 무리를 건들거나 놀래키지 않았다. 그들이 캠퍼스의 길들을 독점하고 있으면 조용히 서서 비켜주기를 기다린다든지, 멀리 돌아 우회하든지 하는 방식으로 보호해주었다. 강변으로 이어지는 잔디밭은 아예 그들의 쉼터로 내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오리들 역시 학생들을 좋아하는 듯 보였다. 학생들이 강변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거나 누워 낮잠이라도 들면 어느새 오리들도 찾아와 그 곁에서 놀거나 잠을 청했다. 어떤 오리들은     제 어미 뒤를 좇는 새끼들의 생리처럼     캠퍼스를 걷는 학생들의 뒤를 열을 지어 수십 마리씩 졸졸 따라다녔다. 강의실까지 들어와 괙괙 고함을 질러댔다. 강의실 바닥은 그들이 함부로 배설한 오물들로 더러워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하는 학생들이 없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들 중에서 하필 같은 동양인인 중국의 한 소설가가 내게 속삭였다.* 만일 중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이처럼 오리 떼들이 노닌다면 모두  잡아서 요리를 해 먹을 터인데 한국 같으면 어찌하겠느냐는 것이다. 순간, 나는 그 유명한 중국 요리 베이징 덕北京烤鴨이 생각나서 "중국인들이 유달리 오리 요리를 좋아하니까 그렇겠지요. 그러나 한국인들은 중국인들만큼 오리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답니다."하고 얼버무렸으나 속으로 켕기는 마음 없지 않았다. 사실은 21세기를 바라보는 요즘에도 한국의 일부 밀렵꾼들이 심심치 않게 야생오리를 잡아먹고 일반인도 길을 가다가 혹 복스럽게 생긴 개라도 보면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놈 참 맛있게 생겼다'고 하지 않던가. (p. 142~)

 

 * 이 무렵 미국은 정치적으로 중국과의 화해를 모색하고 있을 때여서 이 프로그램에는 특별히 중국 대륙의 작가 두 사람을 초청했었다. 한 분은 당시 연세가 60대 중반에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말로는 강청(江靑, 모택동의 처)의 연설문 스크립터로 일하다가 강청을 포함한 소위 사인방四人幫 세력이 몰락하자 이에 연루되어 수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막 풀려났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동서양의 문명을 대비해서 이야기할 때 흔히 서양은 자연을 정복해온 문명, 동양은 자연에 순응하는 문명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동양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보다 어딘가 더 자연을 존중하고 그 어떤 다른 문명권에도 비견할 수 없는 그들만의 자연 보호 정신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에서도 그런 인식은 적지 않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것일까. 내 보기에 다른 차원에서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일상생활에서만큼은 분명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미국이나 유럽 등 소위 선진국들을 여행해본 분들이라면 아마 그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2010년, 대한민국의 들녘에 겨울이 왔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이고 강과 호수들은 얼어붙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스키장, 스케이트장을 찾아 나서는 계절이다. 각 지방 자치단체들 역시 겨울철만의 이벤트나 행사들을 기획하여 자기들 고향을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주목을 끄는 것이 이곳저곳에서 경쟁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겨울 축제들이다. 물론 기특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에 무작정 박수 칠 일은 아닐 것, 환경 보호라는 보다 중요한 원칙 하나만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겠기 때문이다.(p. 143~)

  우리나라 겨울 축제들 중에는     언제부터 생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나     '빙어 축제'니 '송어 축제'니, '산천어 축제'니, '한우 축제'니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관이다. 한결같이 빙어나 송어 등 물고기나 한우 소고기 등을 누가 많이 잡느냐, 누가 빨리 잡느냐, 이를 얼마나 맛있게 요리를 할 수 있느냐, 누가 제일 많이 먹느냐, 누가 제일 빨리 먹느냐 하는 등 온통 먹거리를 주제로 한 까닭이다. 그래서 항상 매케한 연기, 비린 냄새로 역겹기 그지없는 그들 축제장은 온통 살아 있는 생명들을 불에 굽고, 삶고, 지지고, 끓이고, 칼로 회를 쳐서 날것으로 먹는 풍경들로 아수라장을 이룬다.

  그러니 이를 어찌 바람직한 축제라고 일컬을 수 있겠는가. 삶을 즐기는 일, 생명의 존엄을 선양하는 일, 인간과 환경의 동일성을 깨우치는 일, 일상의 쌓인 억압과 스트레스를 카타르시스하는 일, 공동체의 번영과 인간관계의 유대를 확인하는 일 등이 목적이 되어야 할 축제가 이렇듯 오히려 다른 생명들을 죽이는 일로 변질되어버렸으니 참으로 개탄스럽고 욕된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수천 년의 문명을 누려온 우리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먹는 일에 이처럼 한이 맺혀 있다는 말인가. 진정한 의미의 축제라면 먹고 마시기에 앞서 빙어나 송어 같은 생명들의 생태를 교욱하는 일, 이들을 보호하는 데 앞장을 서는 일, 환경과 인간의 필연적인 관계를 깨닫게 하는 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일 등을 권장하는 행사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내가 여기서 문득 20여 년 전, 아이오와대학 체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어떤 것이든 인간다운 인간, 바람직한 인간이 벌이는 행사라면 우선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해선 아니 된다는 그 일차적 불문율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일 것이다. 하물며 우리 자신이 발을 딛고 사는 이 지구, 생태환경의 보호에 관한 것이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 (p.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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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문집 『곡선은 직선보다 아름답다』 p. 140~1442022. 9. 30. <푸른사상사> 펴냄   

 오세영/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전남의 장성, 광주, 전북의 전주 등지에서 성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박목월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저서『한국 낭만주의 시 연구』『20세기 한국 시 연구』『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문학이란 무엇인가』등 23권, 시집『무명연시』『밤하늘의 바둑판』『북양항로』등 27권, 기타 산문집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