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현실』편집위원들이 읽은 지난 계절의 좋은 시>
입 속의 공
정숙자
측은지심으로 꽉 찼다
혀끝에서 튄다
골인에 실패한 적 없다
치열에 끼었다가 혀 밑에 묻혔다가 입천장에 붙었다가 종종 튕겨나간다
수더분한 입심일수록 슈팅이 날카롭다
가엾다 어처구니없다 목불인견이다 싶을 때
딱하다 싶을 때
임전무퇴, 백전백승, 불패신화 결정골 쏟아진다
혀끝으로 차올리는 공
헛발질 제로 망설임 제로
때에 따라선 꾸욱 삼키기도 하지만 백 마디 말인들 단 한 번의 속공 ‘쯧’만 못하다
이해 불능의 처지라면 단연 ‘쯧’이다
쯧쯧- 쯧쯧- 쯧쯧쯧- 쯧쯧쯧-
언니와 나는 오늘도 산책길에서 상당한 슛을 날렸다
초승달 뱃속으로 정확히 들어간 공, 공, 공
넘치다 무너지다 거꾸러지다
쯧쯧- 쯧쯧쯧- 쯧쯧-
-<시현실>, 2007. 겨울
“측은지심”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목불인견”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측은지심을 느끼게 되는 상황은 “이해불능”의 상황과 같다. 목불인견을 말하게 되는 상황도 이해불능의 상황 앞에서일 것이다. 사실은 속수무책이다. 대개 측은지심을 넘어서지 못한다.
정숙자 시인은 “쯧”으로 처리하는 모양이다. “입 속의 공”은 ‘쯧’의 은유였다. ‘쯧’을 많이 차는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다. 측은지심, 목불인견을 말하는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다. 시인들은 사실 괜찮은 사람들이다.
*『시현실』2008.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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