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표현』2008.9-10월호/ 창작마을 시 읽기>
쓰쓰가무시병*
정숙자
쓸쓸함A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식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쓸쓸함A는 처음부터 쓸쓸함A였을 리 없다
쓸쓸함A를 어딘가에 내버린다면 지구 한 귀퉁이 검어질 것이다
쓸쓸함A를 묻을 곳이란 내 가슴뿐, 거기
쓸쓸함A가 쌓이고 쌓여 섬을 이루면 꽃씨가 날아와 필지도 몰라. 꾀꼬리 몇 마리 부화할지도 몰라. 오랜 쓸쓸함A를 위해 노래 불러줄지도 몰 라. 하지만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덤이 되어진대도 쓸쓸함A는 (밀봉된 내 가슴뿐) 아무데나 버려선 안돼
쓸쓸함A를 끌어안은 쓸쓸함B 위로 밤이 내린다
쓸쓸함A의 이면엔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의
스토리 전모가 적혀 있다
쓸쓸함B는 ‘진화론’에 힘입어 쓸쓸함C로 자란다
쓸쓸함C는 뭇 쓸쓸함X에게 ‘적응’을 가르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향기로워질 때까지
사뿐사뿐 일어서는 바람의 무릎을 제안할 것이다
-정숙자《불교문예》2008. 여름호
세계를 향해 던지는 연애편지로서의 시들
김백겸(시인)
정숙자의 시 제목이 낯설어서 찾아보았더니 가을철에 들쥐나 들새에 의해 옮겨지는 전염병이었다. 고열과 두통, 피부발진으로 변해 폐렴과 신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 시인은 쓸쓸함A, 쓸쓸함B, 쓸쓸함C로 번져가는 쓸쓸함의 전염상황을 나타냈다. 쓸쓸함의 보편 전염상황인 X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감상에 떨어지지 않고 지적인 통제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A,B,C,X와 같은 대문자 기호덕분이다. 기호가 상징으로 읽혀야 시의 다의적 의미가 성립이 되는데 이 시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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